노동이 그렇게 싫은가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을 보고...

검토 완료

장윤호(jyhrevo)등록 2022.09.05 10:37
2022 개정 총론 시안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아니 분노했다.
작년 11월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시안)'에서는 '일과 노동에 포함된 의미와 가치' 등을 교육목표에 반영하겠다고 하였다.
 
◦ (교육목표) 학교급별 학생 발달단계 및 학습 수준 등을 고려하고 교육적 인간상, 핵심역량과 연계하여 교육 목표 체계화
- (개선안) 환경 생태교육, 민주시민교육 및 일과 노동에 포함된 의미와 가치 등을 교육목표에 반영하는 방안 검토
출처 :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시안), 교육부, 2021.11.24. p.13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는 고등학교 교육 목표에서만 '일의 가치'를 다루고 있다.
 
다. 고등학교 교육 목표
(중략)
1) 성숙한 자아의식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일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신의 진로에 맞는 지식과 기능을 익히며 평생 학습의 기본 능력을 기른다.
출처 :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국민소통채널 탑재용),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 개발연구팀, 2022.08.26. p.7
 
 
이번 시안를 보며 노동의 관점에서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노동'이 사라졌다. 그 동안 노동교육을 하면서 노동이란 단어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란 단어는 그 동안 금기어에 가까웠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이란 단어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 등이 혼재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 기간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노동인권교육의 성과중에 하나는 노동이란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특성화고에서는 노동인권교육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시안에서는 작년에 발표할 때 까지만 해도 들어 있던 노동이란 단어가 빠진 것이다. 빠진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총론 작업을 하는 팀 또는 교육부로 대변되는 현 정부가 노동이란 단어를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둘째, '일과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고등학교 단계에서만 가르치는 것은 너무 늦다.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지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자주 듣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을 통해서 깨닫고 정립해나가는 것이다. 또한 몸으로 실천하면서 그 의미와 가치를 확립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무심코 듣는 한 마디, 책을 읽거나 발표를 하거나 동료들과 토론 등의 활동을 통해서 하는 한 마디가 중요하다. 그런 활동과 경험을 축적할 기회를 없애버린 것이다,
 
셋째, 특성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공통과목에서 '노동인권과 산업안전보건'을 신설하기로 한 계획은 원안대로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일반고에서의 노동교육의 기회를 줄이고 특성화고에만 교목을 신설하는 것은 안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만, 잘못하면 노동인권교육은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특성화고에서만 필요한 것이구나 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특성화고에서의 노동인권교육이 절실한 것은 맞다. 하지만 노동인권교육은 특성화고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학생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넷째, 일의 가치로 축소하면서 노동이란 단어를 삭제한 것은 교육과정 각론을 만들고 있는 다른 연구팀에게 노동인궈교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실제 현재까지 제시된 각 교과목의 각론 시안에서 노동은 과거에 비해서 더 반영된 것이 없다. 어쩌면 고등학교 교육 목표에만 서술되어 있고 각 교과에는 반영되지 못하는 죽은 구절이 되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교육과정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20~30년 뒤에 우리 사회에서 주축이 될 청소년들에게 어떤 가치를 심어주고, 어떤 역량을 키워줘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미래를 바라봐야 하는가, 미래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떤 능력을 필요로 하는가 등에 대한 물음과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거창하기만 하면 사람들의 삶과 유리된다. 교육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 자신의 삶과 우리 가족의 삶,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다시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와 방향을 고민토록 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삶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했다. 아니 자신과 부모의 삶을 부인하고 거부시키는 교육을 해왔다. 그 삶은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거의 대부분의 삶은 '노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 교육에서 노동은 없었다'. 그래서 작년에 발표한 교육부의 총론 계획을 보고 반길 수 밖에 없었다.

작년 5월 평택항에서 이선호군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이군의 아버지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 회사'에서 8년간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전 이런 일용직이어서 당연히 이 일(일용직)을 해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노동법에는 이렇게 일용직을 8년간 시키면 안 된다고 써있었습니다."
 
노동의 권리와 노동자의 목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전태일 시대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전태일 시대의 근로기준법은 한문 투성이라 읽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근로기준법은 스마트폰에서 언제든 확인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근로기준법이라 하더라도 '교육이 없는 근로기준법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부딪히는 문제들 중에 상당수는 노동과 관련이 있다. 즉 노동이 해결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노동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알려주어야 하고, 그렇게 하도록 체험을 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의 경제활동 인구 10명 중에 7명 이상은 임금을 받아 살아가는 임금노동자이고, 임금노동자의 가족이나 친인척들이 시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미래사회에 대한 걱정과 희망이 혼재한다. 미래는 늘 그렇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래사회를 걱정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 중에 하나는 역시 노동이 아닐까?
자동화나 로봇 덕분에 인간은 피곤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서 취미활동과 자아실현을 할 시간을 확보할 것인지? 아니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빈곤의 나락으로 들어갈 것인지? 미래는 현재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우리가 미래사회에서의 노동을 어떻게 그릴 것이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 노동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것들이 노동교육을 통해서 다루어져야 하고 고민하여야 한다. 이것이 삶으로서의 교육이 아닐까?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 노동이 아닐까?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총론 시안을 재검토하여서 교육부에서 발표했던 것처럼 '일과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상과 핵심역량에 반영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각 교과에서 개발하고 있는 각론에도 반영되기를 바란다.
 
장윤호(안양공고)
 
* 이글중 일부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노동교육은 가능할까', 『오늘의 교육』 장윤호, 69호, 2022년 7-8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른 매체에는 없고 글 중에 일부를 ‘학교에서 제대로 된 노동교육은 가능할까’, 『오늘의 교육』 장윤호, 69호, 2022년 7-8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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