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흉 보는 아버지에게서 나를 보다

정신적으로 한 뼘 자란 중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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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nugugae)등록 2022.09.07 08:40
"아버지 그렇게 며느리들 흉봐서 좋을 게 있어요?"
"아니 없지."
"그런데 왜 며느리가 올 때마다 다른 며느리를 흉봐요?"


아버지는 이번에도 둘째 며느리가 절약하지 않고 제주도 한 달 살기 한 것을 꼬투리 삼아 첫째 며느리 앞에서 흉을 봤다.

"빚을 잔뜩 짊어지고 집을 샀으면 열심히 갚을 생각을 해야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고 다니는 게 아니고 뭐냐?"
 
아버지는 어릴 적 눈병을 앓았는데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해 한쪽 눈 시력을 잃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밖에 나가지도 못했고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내가 어릴 적 부모님과 같은 방에서 지냈는데 아버지는 엄마에게 동네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했다.

"현수네 집은 이번에 송아지를 낳았대."
"정현이네는 벼농사가 잘 돼서 돈 좀 벌었다지."


아버지는 일상 이야기를 하다가도 특히 부잣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상대를 깔보듯 말했다. 나는 시기심 가득한 아버지의 험담이 서서히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나에게서도 발견했다. 
 
나는 회사에서 인간 관계 문제로 힘이 들 때 마음이 맞는 직원과 회사 건물 옥상에 올라가 서로의 처지를 말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다가 가려 말해야 할 것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불혹 후반대의 나이에 여전히 인간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일상 생활을 매일 글로 쓰면서 그동안 알고 있었지만 지나쳐 버렸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소한 언어, 행동, 습관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부분과 원인이 무엇인지 탐색할 수 있었다.

소위 '뒷담'을 하고 나면 잠시 상대보다 낫다는 우월감이 생기지만 혹시 내가 한 이야기가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닌지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쓰게 된다. 내 안에 있는 열등감과 시기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상대를 보기에 사람과의 관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도 이제 곧 50인데 가만히 있으면 꼭 아버지처럼 나이 먹을까 두렵다. 변화가 필요하다.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나 다시 생각해 봤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에서 남을 깎아 내리는 말을 자주했지만, 할아버지의 나쁜 면을 닮지 않으려 애썼고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또한 그토록 원망했던 할아버지를 90세 넘어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다. 나도 아버지에게 고마웠던 기억이 많은데 마음속으로는 아버지의 미운 부분만 뒷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추석이다. 아내가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할까 벌써 긴장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할아버지를 모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할 것이다.

"아버지, 며느리가 손자들 잘 키우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데 전화로 진심을 담아 칭찬 한마디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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