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발매되어 큰 성공을 거두고 "서바이벌 호러"라는 서브 장르를 정립하며 거대 프랜차이즈의 시작을 알린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바이오하자드>
캡콤
먼저 최초의 <바이오하자드>가 게임으로써 어떤 위상을 갖는지 그리고 영화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1996년 일본의 캡콤(Capcom)에서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바이오하자드>는 게임산업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게임이다.
게임산업 측면에서는 호러 영화에서나 익숙한 '좀비'를 가지고 와 어드벤처 게임에 호러의 요소들을 접목시켰고 이 시도는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하며 게임산업에서 '서바이벌 호러'라는 호러 장르의 서브 장르 개념을 거의 정립하다시피 했다.
<바이오하자드>에서 플레이어는 가상의 미국 도시 라쿤 시티 인근 산악 지역에 위치한 의문의 저택에 고립된 경찰 특수부대원이 된다. 수색 작전은 기이하게 변형된 들개들의 공격으로 실패하고 동료들이 실종되거나 죽어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부족한 무기와 물자로 생존하며 좀비를 비롯한 다양한 괴물들과 맞서야 한다. 또한 저택에 설치된 위험천만한 함정들을 지혜롭게 해체하며 살아서 저택을 탈출하고 라쿤 시티로 복귀해 좀비 사태의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바이오하자드>는 1996년 당시 기준에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그래픽과 B급 호러 영화의 정서가 가득한 과감하고 개성적인 연출(실제로 게임의 첫 인트로 시퀀스는 실사 영화로 제작되었다)로 긴장과 공포를 '체험'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즉 그때까지 '호러'라는 콘텐츠가 주로 보는 것에 머물렀다면 <바이오하자드>는 호러의 쾌감을 조이패드를 통해 플레이어의 손에 쥐여준 셈이다.
이와 같은 <바이오하자드>만의 독특한 특징은 게임을 폭넓게 향유하던 전 세계 청소년과 성인 게이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개발사인 캡콤마저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에 캡콤은 발 빠르게 계획에 없던 <바이오하자드>의 후속작들을 내놓았고 잇달아 출시된 후속작들도 연달아 큰 성공을 거뒀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1996년부터 2022년까지 26년 동안 정식 넘버링만 8편, 스핀오프와 리메이크까지 포함하면 28편의 게임을 발매하고 1억 1000만 장 이상 팔아치우며 대표적인 게임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호러나 좀비를 소재로 하는 마이너 장르가 주류 게임으로 진입한 것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거의 최초의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바이오하자드>와 호러 영화의 독특한 상호 영향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어둠 속에 나홀로>와 같은 이전 세대 호러 게임의 영향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호러 영화 특히 좀비 영화의 강한 영향 아래 태어났다. 196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부터 시작된 조지 로메로의 시체 3부작과 스튜어트 고든, 브라이언 유즈나의 1985년작 <좀비오>(리애니메이터)를 거쳐 1992년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에 이르기까지 호러 마니아들이 환호했던 클래식 좀비 영화들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좀비와 크리처 설정에 영향을 미쳤다.
<데드 얼라이브> 이후 영화 속 느릿느릿한 좀비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식상해질 무렵인 1996년, 게임 <바이오하자드>가 호러 마니아와 게이머들에게 도착했다.
이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큰 성공을 거둔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영향을 받았던 영화에 역으로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게임 흥행과 인기에 힘입어 2002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첫 실사 영화 <레지던트 이블>이 제작되어 개봉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영화 <레지던트 이블>은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고 확산시킨 다국적 제약기업 엄브렐러와 좀비 및 크리처 등 극히 일부 설정만 게임에서 가져오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루는 사실상 제목만 같은 완전 별개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레지던트 이블>은 게임의 영향으로 총격전과 격투를 통해 좀비와 크리처들을 상대하는 액션 영화 좀비물이라는 콘셉트로로 나름 신선한 분위기의 오락 영화로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