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 함박마을 풍경. 이곳에 정착한 고려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간판이 눈에 띈다.
오시은
이주 배경 청소년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고단하게 여겨진다. 죽은 아이를 떠올리자 마주 앉은 한나와 수많은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한나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편견이나 차별을 겪은 적이 없는지 궁금했다. 그곳에서 한나는 고려인으로 살았을 텐데, 우즈베키스탄은 고려인에 대해 차별을 하지 않는지, 다른 민족과 갈등을 겪지 않는지 알고 싶었다.
그에 대해 한나가 들려준 얘기는 또다시 편견의 한계를 생각하게 하는 얘기였다.
"우즈베키스탄은 문화 다양성이 넓어요. 한민족이 아니고 다민족이기 때문에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은 없어요. 다른 문화에 관심도 많고요. 할아버지들이 처음 우즈베키스탄에 왔을 때 많이 힘들었대요. 집도 없고 음식도 없고, 기차에서 돌아가신 분도 많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살 방법을 많이 얘기했대요. 회의도 하고요. 그때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같이 살게 됐대요. 우즈베키스탄은 고려인에 대해 같은 나라 사람인데, 전통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한나가 우즈베키스탄에서 편견이나 차별을 겪지 않은 것이 안심되었고, 남의 나라 땅에서 겪지 않은 일을 할아버지의 나라에 와서 겪은 것은 속상했다. 한편으론 이 모든 걸 유창하게 한국어로 말하는 한나가 대견하기도 했다. 낯선 나라에서 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최초의 고려인들이 낯선 땅 연해주에서 그곳의 언어인 러시아어를 익힌 것도 마찬가지다. 언어를 익히는 것은 그 사회로 편입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한나가 한국어를 익히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한국 와서 가장 힘든 게 말이 통하지 않는 거였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학교 다닐 때 한국어 공부했는데 그래도 힘들었어요. 처음엔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한글 조금 읽을 줄 아는 정도였어요. 말이 잘 되지 않아서 취미생활도 할 수 없고, 밤새워서 번역기로 공부했어요. 친구들도 번역기로 도와줬고요. 의사소통을 잘하게 된 건 1~2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그 정도 지나니까 친구들과 얘기도 하고 수업도 잘 들을 수 있었어요. 친구들은 제가 러시아 말 하는 거 신기해했어요. 중학교 때 친한 친구는 쉬는 시간마다 저한테 러시아어 배웠어요. 친구가 러시아어 배우는 거 좋아했어요. 그 친구는 지금도 친해요."
낯설고 힘든 한국 교육
대한민국의 교육이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 교육이라는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의 교육을 모두 경험하고, 여전히 학생의 위치에 있는 한나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국 교육이 좀 심하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게 중요하고, 그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 친구들 보면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자기 길을 찾는 것보다 대학을 위해 더 많이 공부하는 거 같아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자기 꿈을 위해 공부를 하는 거라고 배웠어요. 그런데 한국은 공부만 시켜서 힘들었어요. 꿈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는 거라고 했어요. 한국 교육이 바뀌면 좋겠어요. 학생들이 자유로워지면 좋겠고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자살하는 학생도 많아서, 그런 게 바뀌면 좋겠어요. 저도 처음 2, 3년은 엄청 스트레스 받았어요. 그런데 상담도 하고, 진학 얘기도 많이 해서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어요."
한국 청소년에게도 버거운 입시 교육이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는 얼마나 큰 어려움으로 여겨질지 짐작이 됐다. 소통의 어려움이 있으니 진로나 진학을 위한 정보를 얻기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 현실적으로 어떤 지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한나의 의견을 물었다.
"진로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그런 걸 혼자 찾을 때는 힘들었어요. 고려인 친구 중에 진학과 진로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는 친구들 많아요. 부모님이 일을 많이 해서 응원해 줄 수 없고, 의사소통이 힘들어서 포기하는 친구도 많아요. 꿈도 있고 똑똑한데 학비가 너무 비싸서 대학 입학을 포기하는 친구도 있고요. 학교 시스템에서 지원 받고 활용하면 좋은데 그걸 못하면 힘든 거 같아요. 언제 중간고사 보는지, 기말고사는 언제 보는지, 수행평가는 어떻게 하는지, 원서 같은 건 언제 쓰는지 이런 걸 잘 알려주면 좋겠어요. 그래서 멘토링 같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