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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찾자마자 즉각 호전이 되는 상처는 거의 없다. 진료를 받고 상처를 치료하거나 주사를 맞은 뒤 끙끙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 순간 증상이 점점 옅어지다 사라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진료실의 문을 닫고 나올 때는 망신창이 폐허의 상태다. 진료를 받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이미 그랬는데 그걸 확인하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질리고 지친다(나는 정신과 진료는 받아봤지만 심리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적은 없는데 그쪽은 어떨지 궁금하다). 가끔 내가 주로 처방을 받는 병원 주변의 약국을 지나가다 공허하고 피로한 눈빛으로 앉아있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생각하곤 한다.
'정신과 진료 받고 왔구나... 힘들었겠다...'
중산층의 안정을 위한 고급스러운 취미 생활이라니. 이건 정신과 진료와 심리 상담에 대한 아주 건방진 선입견이었다. 겪는 사람에게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는데.
이 글을 쓰는 건 갑자기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게 어떤 것인지 설명하고 싶어서 때문은 아니다. 사실은 근 며칠간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밤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가다가 내가 친구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택시기사님은 내가 정말 싫었겠다. 밤에 일하는 게 즐거울 리 없는데 나같이 심란한 손님을 태우고 말았으니. 두 번째는 '내가 정말 그렇게 힘들었나?'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난 다음 울면서 했던 이야기를 돌이켜보니 그게 정말 그럴 일이었는지, 내가 감정에 상처를 받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저 술을 마시고 과민해진 탓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의문을 비웃듯 이후로 며칠간은 침대에 누워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다.
감정의 파고를 잘 견뎌내자
사람들은 우울을 겪는 이들에게 위험한 순간들을 몇 가지 꼽고는 한다. 대표적인 게 환절기, 특히 가을이나 겨울로 넘어가는 시간이다. 개인적으로 저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런 시기가 오기 전에는 나름의 대비를 하는 편이다. 또 한 가지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게 있다면 일상의 한 국면이 지나가는 시기도 그렇다. 가령 인생에 너무도 중요한 일을 해내느라 긴장감이 팽팽하게 조여졌다 느슨해지는 때, 일이 너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순간이 막 지나가는 때. 그렇게 밖으로만 여기저기 팔려있던 신경이 다시 안을 향할 수 있을 때 마음 속 숨죽이고 있던 감정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순서가 왔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지금 우울한지 감정적으로 지쳤는지 명백히 파악할 수 있다면 탈진할 정도의 감정의 파고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진료 일정을 당기거나 하다못해 사람을 붙들고 하소연이라도 하며 묵은 걸 털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서두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나에게 있는데 나조차도 그게 뭔지 모른다. 조각이 있는데 이걸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아니면 정말 조각이기는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신경 쓰지 않으면 괜찮을 일인데 괜히 곱씹다가 긁어 부스럼만 만드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확증 편향과 과도한 몰입은 마음 건강에 해로운 일이다. 어떤 감정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면 흘러가고 만다. 그런데 반대로 이게 편향도 과도한 것도 아니고 내가 내 감정과 경험에 대해 옳게 판단한 게 맞는다면? 무시하는 게 아니라 신경을 더 써야하는 것이라면? 하지만 우왕좌왕이 반복될 뿐 진상을 스스로 알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내 상태를 잘 모른다. 아니면 인정을 못한다. 그게 쉬웠다면 애초에 의사와 상담사가 있을 이유가 없다.
내 마음이 힘들 때는 주변이 보이지 않지만 괜찮아지고 나면 나와 같은 구렁텅이에서 괴로워하는 지인들을 발견한다. 이들은 주로 SNS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알리는데 안타까움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 상황을 모면할 해답을 주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고 대신 조언을 하고 싶다. 사람이 기력이 떨어질 때 보양을 하는 것처럼 마음에도 같은 일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가능한 햇볕을 많이 쬐고 제철음식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만나는 것이다. 감각을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열어두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울이든 분노든 감정 때문에 심신이 괴로울 때 비교적 잘 버틸 기초체력이 된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다. 친구들아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보다 수월하게 견딜 수 있게 대비하자. 그리고 약 잘 챙겨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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