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굴욕적 대일외교’를 규탄하는 대학생겨레하나, 진보대학생넷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앞에서 박진 외교부장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최근 일본을 방문해 한일외교장관회담과 기사다 총리 면담을 한 박진 외교부장관이 ‘2015년 한일합의가 공식합의로 존중되어야 하고, 강제 동원은 현금화 전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일본에 되려 면죄부를 주는 굴욕외교를 선사했다’고 규탄했다.
권우성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금전의 대소보다는 명목이었다. 일본이 그 전부터 경제협력자금 명목의 금전 지급을 운운했기 때문에, 이 방식을 굴욕적이라고 판단한 우리 국민들은 일본이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했다. 그런데도 한일 양국 정부가 똑같이 명목보다는 액수에 초점을 맞춘 내용을 언론에 내보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김종필의 방일 스케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이어졌다. 두 정부는 계속해서 액수를 화두로 내세웠다. 10월 23일 자 <조선일보> '남은 것은 결말 짓는 방법뿐'에 따르면, 김종필은 숙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4억 달러 이하를 제시했다는 일본 보도를 부인하면서 "한국은 6억불 선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렇게 한국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한 상황 전개를 비판하는 사설이 10월 31일 자 <조선일보> 1면 실렸다. '본말이 전도된 재산청구 금액의 논의'라는 사설이 그것이다. 사설은 "지난 20일부터 동경서 개최된 한일회담의 성공 여부를 둘러싸고 낙관·비관 양론이 교착되는 가운데, 최근 갑자기 대일(對日) 재산청구 금액이 크게 크로즈업되어 마치 한일회담의 핵심을 이루는 듯한 인상을 퍼트리고 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런 뒤 "대일 재산청구권은 일제 36년간의 한국 침략에 대한 충분한 '배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종래 입장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배상이냐 아니냐'가 논의되지 않고 '4억 달러냐 6억 달러냐'가 논의되는 상황을 이렇게 비판했다.
"우리가 대일 재산청구권을 분명히 배상으로 견지하자는 것은 감정론이 아니라 후세 국민에의 교육과 역사상의 오욕을 씻기 위한 절대적인 주장인 것이며, 일본 측이 우리의 경제사정을 넘어다보고 차관 형식으로 호도하려고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재산청구권 협상은 이러한 명분부터 먼저 확정해놓고 임해야 할 것이며, 금액의 다과는 그다음 문제인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금전의 명목에 일차적 관심을 갖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함께 금전의 액수를 부각시키며 이쪽으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쿠데타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민정이양이 되지 않아 박정희 군사정권이 민심 동향에 특히 민감할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청구권 문제에 대한 국민 정서를 몰랐을 리 없는데도 분위기를 금액 쪽으로 몰고 갔다. 한일 두 정부가 공동으로 '쇼'를 연출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방일 전부터 김종필은 금액 문제를 놓고 비장한 모습을 연출했다. 10월 12일 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회담을 앞둔 11일 "일본이 과거 36년 동안 우리에게 압박을 주었던 것을 회상한다면 우리 측이 요구한 청구권 액수에 관해 이해를 하게 될 것"이라며 액수 쪽으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지금이나 그때나 일제 식민 지배에 비분강개하는 사람들은 사과·배상을 관철시키는 데 일차적 관심을 두지 금전 액수에 일차적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비분강개하는 듯하면서 금액 액수를 강조한 김종필의 모습은 진심이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 정권은 이렇게 5·16 쿠데타 직후부터 일본 정부와 한편이 되어 한국 국민들을 상대로 외교 활동을 펼쳤다. 그러다가 결국 1965년에 굴욕적인 한일기본조약 및 청구권협정을 성사시키고 한국 경제를 일본에 예속시켰다. 한국 국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을 위해 외교 활동을 수행한 박 정권의 당연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윤석열 정부의 '대한(對韓) 외교'에 경각심을 갖게 만드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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