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

검토 완료

최미숙(cms743)등록 2022.07.21 11:27
학교를 옮겼다. 경상도 하동과 가깝고 전어와 재첩으로 유명한 곳으로 분교 세 개가 있었다. 한 곳의 분교장을 맡았다. 집에서 자동차로 1시간이나 걸렸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니 힘들었다.
 
전교생 19명으로, 교사는 신규와 다른 지역에서 전입해 온 분 각각 한 명, 나 포함 여선생님 셋과 학교를 관리하는 주사님이 전부였고 복식학급이다. 나는 1, 2학년, 경상도에서 온 선생님은 3, 4학년, 신규는 5, 6학년을 맡았다. 1학년은 남학생 셋, 2학년은 여학생 하나, 남학생 둘로 총 여섯 명의 아이들과 생활하게 되었다. 마침 막내아들도 입학할 나이가 돼 고민 끝에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아침마다 잠에서 덜 깬 아들을 데리고 먼 곳까지 다니자니 전쟁이 따로 없었다.
 
섬진강휴게소 뒷길 따라 학교 가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시간에 쫓겨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니 차츰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3월 매화를 시작으로 개나리와 진달래가 축제를 벌이면, 이어 벚꽃이 터널을 만들었고, 하얀 솜사탕 같은 배꽃, 화려한 철쭉이 봄을 마감한다. 여름이면 늘씬한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가을엔 형형색색 코스모스와 국화, 겨울엔 하얀 눈이 출근길을 기분 좋게 했다. 일년 내내 차창 밖으로 계절을 느끼며 눈 호강했다.
 
학부모들 대부분은 딸기, 애호박, 수박, 양상추 등 하우스와 배 농사로 부농에 속했다. 인심도 후해 수확 철 교무실에는 딸기, 애호박, 양상추, 수박 등이 끊이지 않았다. 체육대회가 되면 열아홉 명의 학생과 학부모, 다른 주민까지 달리기, 줄다리기, 그 외 프로그램으로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섬진강에서 잡은 재첩으로 국과 회, 하우스에서 재배한 과일 등 맛있는 음식으로 동네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학부모들과 친해지면서 장소를 섭외해 쑥 캐기, 감, 밤 따기, 고구마 캐기, 섬진강 재첩 잡기, 삼겹살 구워 먹기 등 될 수 있으면 토요일은 주로 체험을 했다.
 
시골이지만 쑥을 캔 적이 없어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재첩 잡으러 가는 날엔 그곳에 사는 학부모가 아이스크림까지 사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아이들은 수영하느라 제첩은 잊은 듯했다. 그래도 여학생과 학부모님께 얻은 것을 들고 학교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뻔했을까 아찔하기만 하다.
 
가을이면 밤과 감을 따러 다녔고, 수고했다며 준 밤은 급식실에서 삶아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서 먹고, 남은 시간은 공을 찼다. 아이들 집에 많이 있으면서도 학교에서 친구와 같이 먹는 맛은 또 다른지 서로 먹으려고 다투기도 했다. 삼겹살 먹는 토요일은 책가방과 푸성귀가 든 비닐을 들고 온다. 오전에 수업하는 동안 주사님이 불 피우고 모든 걸 준비해 놓으면 일찍 수업 마친 내가 고기를 구웠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은 순서 없이 급식실로 와 밥을 먹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축구를 끝으로 토요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섬진강에서 재첩 잡았던 일은 지금까지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들과 다섯 친구는 수업이 끝나기 바쁘게 학교 운동장과 마을로 돌아다니며 얼굴이 시커멓게 타도록 놀다가 퇴근 시간에 맞춰 학교로 돌아왔다. 치고받고 싸울 때도 있지만 곤충, 벌레를 잡으며 온 들판을 휩쓸고 다녔다.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려고 해도 친구와 놀고 싶어 도무지 집중을 못해 애를 먹었다. 도중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채 보내 미안한 마음이 컸다.
 
분교의 밤하늘은 수많은 별이 쏟아질 듯 반짝였고, 깜깜한 곳에서 빛을 내며 나는 말로만 듣던 반딧불이를 처음 보고 신기했다. 아름다운 별을 넋 놓고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곤 했는데 학교를 떠난 후로 어디에서도 그런 광경을 보지 못했다. 막내아들도 가끔 분교에서 봤던 별 이야기를 한다. 아름다운 신세계를 경험했고 잊혀지지 않는다며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 같이 운동장을 휩쓸고 다녔던 친구들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렀다. 민수 형, 용재 형, 은영이 누나, 용재 동생 용만이, 전학 간 친구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년 전 언제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학교를 떠난 후 하동 가는 길에 한 번 들른 적이 있다. 처음 본 선생님과 축 늘어진 교문 앞 화려한 겹 매화만이 변함없이 반겨 주었다. 함께했던 아이들과 고마운 학부모님은 기억으로만 만나고 나왔다.
 
지금은 분교가 다 폐교되었다. 그곳을 졸업한 학생과 선생님들의 수많은 이야기와 사연을 간직한 채 먼지와 거미줄만 가득할 것이다. 그동안 여러 학교를 거쳤지만 이곳만큼 아름다운 생활은 경험하지 못했다. 학교생활이 지칠 때면 가끔 조용히 눈감고 그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학교가 입학할 학생이 없어 하나둘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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