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네 집' 옥상에 잔뜩 달린 무화과를 주둥이가 아릴 때까지 먹었다
픽사베이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겹겹이 쌓인 '효녀네 집' 옥상에는 옆집 할머니네 무화과나무 가지가 치렁치렁 넘어왔다. 옥상에 무화과가 잔뜩 걸리면 이윽고 가을이었다. 옆집 할머니는 '느그집 옥상에 열렸응께 그 무화과는 느그 꺼!'라고 말하는 쿨녀였다. 주둥이가 아릴 때까지 무화과를 먹었다.
늙고 낡아가는 효녀네 집은 찬바람에 코가 시렸다. 장대비라도 내리면 코앞까지 물난리 나기 일쑤였지만 무화과가 열리는 옥상을 가진 신기한 집이었다. 사춘기 효녀의 일탈을 추억으로 눈감아준 넓은 집이었다. 그 집의 공기, 온도, 습도에 관해 묻는다면 '라떼 꼰대'로 등극할 자신 있다. 끝도 없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종종 대책, 생각, 계획 같이 근사한 것은 1도 없는 주제에 세상 물정 모르는 태평함이 그 집 때문은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품기도 했다. 그 집에서 보낸 나의 10대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성적은 보잘 것 없고, 짧은 다리를 비롯한 외모에 어느 것도 볼품 없었지만 꽤 괜찮았다.
효녀와 불효녀 사이 질풍노도 줄타기가 쓸쓸해지면 도망칠 구석 골목과 옥상 다섯 번째 계단이 있었다. '공부 잘하냐?'는 세상 불편한 질문으로 서툴게 관심 주는 동네 사람들도 함께였다. 숱한 궂은날이라도 그 집의 낮은 하늘엔 굵은 별들이 반짝였다.
이 모양 이 꼴인 현실 다큐도 '그 집'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 별거 아닌 해프닝쯤으로 둔갑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우당탕탕 달리고 넘어졌다. 땅을 밟고 망나니마냥 뛰어다니며 보낸 시간은 각가지 이야기를 만들고, 그 시시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줬다.
덕분에 첫 월급 80만 원에 가치를 평가 받았을 때도, 시험에 떨어져 피시방에서 무기력한 세월을 보낸 시절에도, 관계에서 받은 상처로 숨고만 싶던 순간도 그럭저럭 견뎌졌다. 때때로 나라는 인간이 썩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뭐 그렇게 형편없는 놈은 아니지 않나. 무언가가 날 일으켜 세웠다.
이야기 꾸러미의 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