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모호필름
사랑하는 영화가 부진해서 슬프다는 이야기만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헤어질 결심>에 대한 반응 중 너무 이상한 게 있었는데 바로 이 작품이 불륜을 미화해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농담처럼 웃어넘겼는데 심지어 기사로도 나온 걸 보면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래봐야 불륜'이라는 식의 문장을 보면서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 사람들이 불륜을 다룬 작품에 그렇게 야박했나? 지금도 TV를 틀면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차고 넘치고 이들이 욕을 먹을지언정 그중에는 시청률이 높은 작품도 있다.
세기의 로맨스로 추앙받는 <타이타닉>과 같은 작품을 생각해보자. 대형 유람선이 침몰해도 로즈와 잭의 관계가 사람들이 말하는 '불륜'에 속하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그쪽은 결혼이 아니라 약혼이어서 괜찮았던 걸까.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불륜'의 기준으로 서래와 해준의 관계를 살피자면 사실 이들의 관계는 그리 극한으로 가지도 않는다(하지만 그 기준을 벗고 보면 <헤어질 결심>의 로맨스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서래와 해준은 아주 깊이 감정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해봐야 비 오는 날 산사에서 데이트를 하며 즐거워 한 게 다다. 이 영화는 사랑으로 충만하지만 두 주인공의 관계는 전형적인 '애정 관계'로 수렴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어떤 관객들은 이 작품의 '불륜'에 더욱 볼멘소리를 냈을까. 사실 문제는 서래와 해준의 관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 사람의 주변이 더 문제였을 것이다.
<헤어질 결심>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가령 <헤어질 결심>에는 파탄이 나기 전에는 행복했던 부부 관계, 상대방의 바람 이후에도 결혼을 지키려 노력하며 꿋꿋하게 제도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배우자 같은 건 등장하지 않는다. 서래의 첫 남편인 기도수는 서래를 학대했고 두 번째 남편인 임호신은 서래를 이용했다. 그나마 평범해 보이는 정안과 해준의 관계도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두 사람의 집처럼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영화 내내 서래와 해준이 밀물과 썰물처럼 감정적 파고를 주고받는 동안 앞의 세 관계들은 먼지처럼 박살이 난다. 가장 난감했던 건 영화의 유일한 베드신인 정안과 해준의 정사 장면이었는데 관계 도중 해준은 수사(라고 하지만 사실상 서래)를 생각하느라 넋이 나가 있고 이런 해준의 모습을 정안은 별일 아닌 듯이 넘긴다. 그리고는 아무리 서로 미워도 건강과 사랑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하자고 제안한다.
솔직히 내가 아무리 섹스에 대한 환상이 깨진 지 오래라지만 저건 성관계를 이야기하는 말투처럼 들리지 않는다. 차라리 필라테스를 등록하는 사람에 가깝지(참고로 나는 이 장면을 어쩌다 커플 전용 상영관에서 봤는데 빙하기와 같은 그 순간의 분위기는 결코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즉 <헤어질 결심>에는 이성애 결혼 관계가 익숙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게 불안한 관객들을 안심시킬 요소가 없다. 이 작품에서 결혼제도 안에 안착한 관계들은 이미 문제가 있거나 단조로운데 오히려 거기서 벗어난 서래와 해준의 관계는 강렬하고 드라마틱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 결말로 향하는 동력조차 서래와 해준의 캐릭터 자체에서 생성된다. 서래의 결심은 오직 서래이기에 가능한 것인데 이 또한 전형성에서 엇나가는 부분이다.
가령 불륜을 소재로 한 작품에는 그럼에도 결혼이 충만한 것임을 드러내는 요소들이 등장하는데, 불륜을 감행한 인물들은 이러한 것들을 잃거나 그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보금자리가 될 안정적인 가정, 자신에게 충실한 배우자, 자신의 결혼 생활을 지지하고 부러워했던 주변 인물 등등.
보통 불륜을 다룬 작품에서 주인공이 추락한다면 이 때문인데, 이건 이성애 결혼제도에서 이탈한 대가로 가해지는 일종의 처벌이다. 그리고 이 처벌이 있어야 그 제도에 발붙인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에게는 애초에 그 불안을 해소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불안을 이기고 아름다움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