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석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72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0.7.17
연합뉴스
하지만 개헌에 대한 논의만큼은 한국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독일 기본법이 제정된 지는 올해로 73년이 됐는데, 그동안 무려 68번이나 수정됐다.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바꾼 셈이다. 물론 일부를 제외하고는 개헌의 내용 대부분은 국체나 정체와 같은 근본적 내용이 아니고, 주로 추상적인 기존 조항을 구체화하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잦은 개헌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고, 이런 비판은 특히 기본법의 날에 표출된다. "하위 법률로 할 수 있는 것을 왜 굳이 기본법에 집어넣느냐" 혹은 "그렇게 첨가하는 대부분은 어차피 헌법소원으로 보장을 받을 수 없다", "원래 기본법의 간단명료함의 미학을 괜히 훼손한다" 등의 주장이 기본법의 날에 언론 기고문이나 연설에 거듭 등장한다.
물론 독일의 연성헌법과 한국의 경성헌법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연성헌법은 개헌이 쉽고, 경성헌법은 개헌이 어렵다). 두 헌법은 독재 후 냉전·분단국가에서 제정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독일은 나치 전 바이마르공화국 때 이미 민주주의를 경험했고, 전후 탈나치화가 어느 정도로 이뤄졌다. 반면 한국은 외세 독재(일제)를 겪은 후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했고, 북한과 냉전 속 열전(熱戰)을 치렀으며, 군부독재 후 친독재세력을 청산하지 못해 정치적 양극화라는 극단적 저주를 안게 됐다.
양당 카르텔로 탄생한 제왕적 대통령제
한국이 35년 동안 헌법에 손 한 번도 댈 수 없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그리 놀랍지 않을 수도 있다. 독일은 변경하기가 더 까다로운 국체나 정체를 개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기본법의 다른 내용을 수시로 바꿀 수 있었지만 한국은 개헌논의에서 거의 예외 없이 권력구조가 핵심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1987년 당시 거대 양당의 카르텔이 진행한 또 다른 차원의 협치로 창조해놓은 87 체제를 해체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행 헌법은 당시 여야 의원 각각 4명으로 구성된 이른바 8인 정치회담을 통해 탄생했다.
이렇게 정당 카르텔의 산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의 지나친 대통령 중심제의 기이한 권력구조는 지속적으로 현실 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이와 같은 사실은 지금이라도 헌법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권력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의 문제는 물론 간단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기존 제왕적 대통령제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