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는 서울특별시청에서 한양공업고등학교 앞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서울시 중구의 도로로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에서 따왔다.
연합뉴스
충무로, 을지로, 충정로는 모두 서울에 있는 도로 이름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한국정부가 수립된 뒤 첫 서울시장이었던 김형민 시장은 일본식 행정구역명을 정리하면서 주요 도로의 이름을 지었다.
그중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도로명 6개 가운데 충무로와 을지로, 충정로가 있다. 이 도로명들에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 을지문덕 장군, 그리고 조선 말 충정공 민영환은 모두 우리나라가 침략 당했을 때 외세에 맞선 인물들이다.
전쟁 피해자의 정체성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위인들은 대부분 우리나라가 침략 당했을 때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이다. 당나라에 맞서 싸운 연개소문,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낸 서희와 강감찬, 병자호란의 영웅 임경업, 행주대첩 권율, 그리고 조선말기와 일제 강점기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광개토대왕이라는 예외를 제외한다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는 나폴레옹, 칭기즈칸, 카이사르 같은 침략형 위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에 바탕을 둔 문화 콘텐츠도 대체로 우리 역사를 전쟁 피해의 역사로 그리고 있다. 누적관객 1700만 명으로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든 <명량>을 필두로 <남한산성>, <안시성>,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과 일제에 대한 저항을 그린 <암살>, <밀정>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배운 역사, 그 역사를 재현하는 문화 콘텐츠를 보자면 우리는 침략자의 정체성보다는 침략당한 피해자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100년으로 좁혀서 보면 전쟁 피해자의 정체성이 더 가시화된다. 러시아, 청나라,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들의 전쟁터가 된 20세기 초반을 거쳐 35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당했다. 전 국토는 전쟁터가 되었고, 사람들은 총칼에 죽기도 했고, 전쟁 동원 체제 하에서 착취당하며 병들고 죽어 갔다.
해방 이후에는 인민군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물론 한국전쟁의 경우 한국은 일방적인 피해자라기보다는 동등한 입장에서 전쟁을 치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국민들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 무수한 전쟁 피해자가 양산되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 사회가 전쟁과 관련해서 피해자 서사에 익숙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피해자 서사는 강한 군사력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페미니스트 연구자 류진희는 "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역사의 대중적 판본들이 최대 영토의 고구려, 화랑도의 신라, 혹은 무신 정권의 고려 등을 스펙터클하게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국민총생산을 훨씬 상회하는 국방비를 쓰는 한국이 여전히 북한군의 위협을 근거로 강한 군사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줄이지 않는 것을 보면 피해자 서사와 강한 군사력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 위 조상들이 무수한 전쟁 피해를 겪어온 피해자인 것은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2022년의 대한민국을 군사적인 면에서 과연 피해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2022년에도 대한민국은 피해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