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부터 2021년까지 원전발전비중과 한전영업손익 비교 그래프. 지난 15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근거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여당 측 주장을 "거짓선동"이라고 비판했다.
양이원영 의원실 제공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실현 안 된 공약에 불과하다. 원전 발전이 전기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문재인 정부 집권 첫해인 2017년 26%에서 2020년 29%로 오히려 늘어났다. 탈원전 정책이 전기 수급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한전에는 적자, 국민들에게는 요금 인상을 안겼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찾기 힘들다.
전기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원전을 빨리 가동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문재인 정부의 원전 가동 중단은 노후화, 잦은 고장, 안전 문제로 인한 것이었지 탈원전 때문이 아님은 원전 운행일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새 원전을 지어 전기 생산을 늘리는 데만 10년 이상 걸린다. 당장의 한전 적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한전의 대규모 적자에 대한 원인 분석도 대책도 모두 틀렸다.
한전의 적자 규모가 올 1분기만 해도 7조 8천억 원에 이른다. 이대로 올해를 넘기면 적자가 최대 3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원유, 액화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연료비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할 수 있는 연료비 연동제가 2020년 12월에 도입되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에 인상 요인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정치적 결정이 한전의 적자를 키웠다면 문재인 정부에 일정 책임이 있다. 그래서 이제라도 연료비 연동제를 제대로 시행해 한전 적자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 또한 일리가 있다.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는 국민의 빚이다. 더 이상 부실이 커지기 전에 요금에 인상 요인을 반영하는 것이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거나 '전기 요금 인상 불가' 공약을 고집하는 것보다 나은 결정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요금 인상은 최후의 방책이 되어야 한다. 전기 요금이 한전에 수입이라면 지출의 투명성과 적절성도 따져봐야 한다. 한전 지출의 80%는 전기 구입비, 나머지 20%는 인건비 등 유지비다. 지난 2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한전의 자구 노력과 반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자 한전은 경영진 성과급 전액과 1급 이상 간부 성과급 50% 반납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처방이라기보다는 국민에게 위기감과 해결 의지를 보여주는 제스처일 뿐이다. 경영진과 고위 간부의 성과급 반납만으로 한전이 노력을 다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한전 예산의 80%를 차지하는 전력 구입비의 적절성을 살피는 것이 한전 적자 원인 규명의 첫 열쇠라 할 수 있다.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1년 치 넘은 민간발전사
민간 발전사인 GS EPS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2555억 원으로 작년 1년 치를 넘어섰다. 파주에너지 2310억 원, SK E&S 1051억 원, 포스코에너지 1066억 원, GS파워 940억 원, 에스파워 303억 원, 평택에너지 162억 원, 모두 1분기 영업이익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 7개 사 영업이익이 8387억 원으로 작년 1년 치보다 286억 원 많다. 전기를 생산해 한전에 팔아온 회사들이다.
국민들은 폭등하는 유가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전은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하루가 멀다 않고 요금 인상을 요구하는 뒷전에서 민간발전사들은 석 달 장사로 1년 치 수익이 넘는 벌이를 하고 있다. 민간발전사만의 잘못만도 아니다. 비싼 값으로 전기를 사들이는 구조를 운영하는 한전과 감독에 태만한 정부, 모두 한전 적자를 키워온 장본인들이다.
민간발전사의 폭리에 가까운 영업이익이 발표되자 과도한 이익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전의 전력거래소를 통한 '전력도매가격'의 상한을 설정하도록 요청하는 국민 청원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민간발전사의 반발도 있고 신재생 에너지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석 달 전기를 팔아 1년 치 수익을 거두는 전력 거래 구조를 유지하면서 전기 요금을 올려 한전의 적자를 메울 수는 없는 일이다. 연료비 연동제 시행보다 시급한 건 연료비가 오를수록 이익을 한없이 늘릴 수 있는 한전과 민간발전사의 잘못된 거래 구조를 바로잡는 일이다.
지난 4월 2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에너지 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에는 한전의 독점 판매 구조를 허물고 다양한 수요 관리 서비스 기업을 키우겠다는 구상이 포함되었다. 이를 두고 전기 민영화냐 아니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엄밀히 구분하자면 한전 전체의 민영화가 아니라 전력 판매만 분리해서 민간의 참여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전 적자 구조로는 민간 판매사의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이 판매 시장에 뛰어들려면 소비자에게 전기를 팔아 이익이 생겨야 하고, 이 이익은 전기요금 인상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전기를 사들이면서 민간발전사에 막대한 이익을 몰아주고, 전기 판매시장을 개방해 민간 전기판매상에게 전기요금 결정권이 주어진다면 통신 시장을 개방해 통신 요금 폭탄을 안겼던 후과보다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여전히 국민들만 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