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지는 대학 입학생의 수도권 쏠림 현상교육부의 교육기본통계조사 결과 지난해 대학 정원에 미달한 인원 4만586명 중 3만358명이 비수도권 인원이었다. 지역 거점 국립대학교인 전북대, 전남대, 부산대, 경북대 등은 지난해 추가 모집을 통해서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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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에서만 살아온 사람을 두고 시시하게 살았다고 여긴 적은 없다. 대학에 가고 가지 않는 것,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남이 아닌 내 상황이 되고 보면 양가감정이 들 때가 많다.
석사과정 중 자립형 사립고 학생들의 논술 첨삭 일을 할 때는 이 우수한 학생들이 '겨우 지방대 대학원생'에게 가르침을 받는다고 여길 것 같아 위축됐다. 내가 맡은 학생이 "선생님은 어느 대학 나왔어요?"라고 물었을 땐 유명 대학이 아니라고 나를 무시할까 봐 성급하게 불쾌해졌다.
며칠 전 지인이 메일로 물었다. "스스로 거품이 껴있다고 느껴본 적 있으세요?" 진학과 관련해 고민하다가 내 경우가 어땠는지 물은 것이다. '거품이라... 내 인생이 거품이지.' 실력에 자신도 없으면서 교수님께 '박사과정은 서울대로 가겠다'고 선포한 기억을 떠올리면 손발가락이 곱아든다. 몇 년 전까지 외국 생활을 추구했던 것도 돌아보면 일부 '서울병'과 연관이 있다. 주류에 속하지 못할 바에야 내 의지로 비주류가 됐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일 답장을 쓰다가 생각했다. 거품이 낀 건 내 마음일까, 우리 사회 구조와 문화일까. 내가 만난 한 상사는 내게 '그나마 국립대라 쳐준다'는 식의 말을 하며 지방 사립대를 나온 다른 직원을 폄하했다. 서울 출신인 자신이 모르는 대학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내 안의 열등감과 허영심은 학습된 수도권 중심주의이기도 했고, 간판이 아닌 '실속'을 원해도 그걸 우리 지역에서 얻을 수 없다는 한계에서 오는 것이기도 했다. 수도권 중심 사회 구조가 만든 문화, 그 문화를 재생산하는 사람들, 그에 따라 강화되는 사회 구조가 사슬처럼 이어져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를 가르고 있다.
학력과 소속을 서열화하지 않는 수평적 시선조차 이 연결고리 앞에선 쉽게 무력해진다. 정치권은 '지역인재 육성'을 구호처럼 외치지만 지방 소재 대학을 소위 '지잡대'로 낙인찍는 문화 속에서, 게다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소득, 자산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지역 인재'라는 칭호를 반기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
'지역 인재'가 탐나는 말이 되도록
부산에서 산 지 5년쯤 됐다. 타지에서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 갔을 때 부산에 반했고 운 좋게 부산에 일자리가 났다고 얘기하면 대부분 납득하지만, 이렇게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왜 서울로 안 가시고?"
"서울 체질이 아니라서요"라고 웃으며 답했는데 어쩐지 뒷맛이 썼다. '굳이 서울 아닌 지역에서 일을 구할 이유'를 묻는 그 질문에는 '응당 서울이 1순위'라는 전제가 있었고, 나는 그런 전제를 공유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