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창기 국세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OECD는 '상속증여세에 대한 연구보고서'(2020)에서 우리나라처럼 상속 시점에 발생한 미실현 소득에 대해 양도차익 과세를 하지 않으면서 상속세에서 큰 규모의 공제를 허용하는 경우에는 경제적 왜곡이 야기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속세 일괄공제의 축소, 금융자산공제 폐지, 신고세액공제 폐지, 가업상속공제 축소 등을 통해 실효세율을 높여 나가야 한다.
계층 간 격차 확대와 계층 고착에 상속자산의 영향이 크다. 경제 능력의 평가 기준으로 자산이라는 척도를 소득 못지않게 중요하게 봐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자산 및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요구다.
증권거래세율 인하도 예정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증권거래세를 인하하면 기관 투자자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초단기 대량거래를 할 수 있게 돼서 개인 투자자들의 수익 기회를 박탈한다.
윤석열 정부는 또한 주식 양도차익 과세의 시행을 미루거나 100억 원 이상의 주식소유자에게 국한해 과세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는 부동산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나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와 견줘 볼 때 매우 불공정한 것으로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계획대로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실현하고 5000만 원 이상의 양도소득으로 국한된 과세 기준을 500만 원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또 다른 과세 강화가 필요한 분야는 부동산 보유세로서 부동산시장 안정화 측면에서도 필요한 정책이다. 부동산시장은 특별하게 불완전 시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공급의 비탄력성 때문이다.
세계 어디서나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만들어서 공급하는 것은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주택은 일정 규모의 토지를 필요로 하고 나라마다 토지의 양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택지가 부족해 정부가 나서서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고 이를 건설업체에 넘기고 분양의 과정을 거쳐서 실제로 입주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식은 계획부터 입주까지 더 긴 시간이 걸린다.
공급에 비해 수요는 미래의 가격 전망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화하므로 정책 수단을 수요 조절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쉽게 가열되는 수요를 적절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공급이 비탄력적이므로 거래량의 작은 변화에도 가격변화가 크다. 매매가격의 변동성은 전월세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서민들의 주거생활은 심각하게 어려워진다.
조세정책이 이미 가열된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잘 정착돼서 납세자들의 머릿속에 상수로 자리 잡은 보유, 양도, 취득에 대한 적정한 수준의 부동산세제는 시장이 불안정하게 변하는 길목에서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투자자의 수익률 전망을 낮춰줘서 후속 투자를 자제하게 한다. 취득세는 빈번한 거래에 부담을 주고, 보유세는 소득수준 대비 과도한 부동산 보유에 비용을 부과한다. 세제가 사회와 납세자들의 의식 속에 잘 착근하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려고 하고 있다. 공시가를 2021년 수준에 고정시키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더 낮추는 방식으로 국회의 동의 없이 시행령만을 개정하여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양도세 중과 배제 등 다른 부동산 세제의 완화와 함께 이제 안정화되어가는 부동산시장을 다시 흔들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시장 다시 흔들릴 수도
정책효과 측면에서나 경제 능력에 상응하는 과세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종부세의 부담 수준은 최소한 현재의 수준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1세대 1주택에 종부세 과세 기준을 현재보다 하향 조정하거나 세대당 보유주택수 구분 없이 보유가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양도소득의 과세체계는 현행의 양도가액을 기준으로 비과세하는 방식에서 장기적으로는 양도차익을 기준으로 일정액(예를 들어 개인별 생애 통산 5억 원)을 소득공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형평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의 정상화도 필요하다. 주요 국가들에서 부동산 임대소득은 사업소득이 아니라 자산소득으로 봐서 독립적인 영역으로 분류하며 사업소득처럼 높은 경비율을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 우리 정부는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환경·에너지세에 에너지 사용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현재 수송부문에 편중되어 있는 환경·에너지세를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규율하고 있는 발전 및 산업 부문과 균형을 이루도록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
탄소세 도입을 포함한 환경·에너지세 개편은 세제 구조를 전반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급진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장기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확보한 재원을 바탕으로 기후대응기금을 마련하여 변화과정에서 큰 부담을 안게 되는 가계와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어야 한다.
정부는 불공정한 과정에 대한 개혁도 해야 하지만 경제활동 결과물에 대한 재분배도 이뤄야 한다. 조세정책은 확보된 재원으로 복지정책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과세는 국가가 지원한 사회 인프라의 도움으로 경제적 성과를 획득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재분배를 통한 양극화 치유의 수단으로서 매우 유효한 정책 수단이다. 그러나 조세라는 정책 수단이 한국 사회에서 제 역할을 찾기 위해서는 정치가들의 용기와 시민들의 강한 요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