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아 카림의 <가난을 팝니다>
오월의봄
카림은 그라민은행을 비롯한 이른 바 '착한 자본주의'가 결코 신자유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착한 일은 이윤의 극대화와 결합되었으며 토지, 물, 식량 등에 관한 구조적 개선 없이 이윤과 소비자 확대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방식과 다를 것이 없는 접근법에 치중했다고 비판했다.
그라민은행이 내세우는 높은 회수율의 이면도 폭로했다. 대표적으로는 강압에 의한 회수. 대출 담당자는 회수율을 높게 유지하라는 상부의 압박을 받았고, 채무자는 빚을 상환하기 위해 다른 기관에서 또 다른 대출을 받기도 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집을 부순 뒤 그 자재를 팔아 빚을 상환하는 상상을 초월한 사례까지 나타났다. 그라민은행이 높은 상환율을 기록한 이면의 참담한 현실이었다.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카림은 그라민은행이 강조한 빈민 여성의 삶의 질 개선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 사업이 가난한 여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것은 맞다. 하지만 여성이 대출을 받았지만 실제 사용자는 대부분 남성이었다. 특히 농촌 여성은 실질적인 자본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비록 여성이 주요 대출 대상이지만, 많은 남편이 일단 그들의 아내가 돈을 얻으면 통제권을 주장하기 때문에, 종종 남성이 실질적인 수혜자였다. 즉 여성의 권리 향상을 기한다는 목표를 표방했지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결합한 사회에서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가난하고 취약한 여성을 대출시장으로 끌어온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42] [43]
뉴욕 주립 빙엄턴 대학교 사회학 교수 월든 벨로는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빈곤과 싸우는 많은 여성을 도왔다는 면에선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을 가난하게 하는 근본적인 사회구조에 접근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소액대출 시스템으로부터 실질적인 혜택을 얻은 계층은 극빈자보다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가진 계층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많은 연구자는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해 극빈자가 빈곤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지 않는다. 실제로 그라민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지 8년이 지난 극빈자 중 55%가 기본적인 의식주 욕구를 채우지 못했고 많은 여성이 빌린 돈으로 사업을 하기보다는 당장 급한 식량을 구입하는 데 써버렸다는 보고가 있었다.[44] 유누스의 그라민은행 모델이 생존전략으로서 기능할 뿐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형태의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주창했다고 하는 것은 과장이라는 분석이다.[4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소득, 저신용의 금융 취약계층은 여전히 많다. 적절한 금융지원 없이 이들이 가난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정부, 금융기관, 사회가 이들에 관심을 가지고 포용적 금융을 강구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은 없다.[46]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은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금융약자를 보호하려는 포용적 금융 운동을 세계에 널리 전파한 공로는 인정받아야 한다.
마이크로크레디트에 관한 유럽의 행동 강령(European Code of Good Conduct for Microcredit Provision)은 마이크로크레디트의 모범 사례를 수립하고 운영 및 보고 표준을 파악한다. 행동 강령은 고객 및 투자자 관계, 거버넌스, 리스크 관리, 보고 표준, 관리 정보 시스템까지 크게 5개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그 중 고객 및 투자자의 관계 조항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과 자금을 대는 투자자에게 투명성과 신뢰성을 보장해주고자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1.18 조항에서는 채권 회수 관행을 규정한다. 상환을 요구할 때는 고객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해야 하며 물리적인 접촉을 포함한 협박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거버넌스 부문에서는 강력하고 책임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강조하며 비즈니스 계획, 이사회 및 경영진의 역할과 책임, 외부 감사를 다룬다. 리스크 관리 조항은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이 금융기관인 점을 고려하여 금융사기 위험을 식별하는 시스템과 절차 및 내부 감사 기능을 정했다.
보고 표준에서는 사회적 및 재정적 성과를 보고하기 위한 공통 표준을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관리 정보 시스템에서는 고객에게 높은 효율성과 신뢰성을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데이터를 수집 및 가공하여 필요한 형태로 정보를 배포하는 프로세스를 제시했다.[47]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하는 기업은 이 강령을 준수해야만 유엔의 고용 및 사회 혁신 프로그램(EaSI)에서 제공하는 펀드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이 펀드는 소액 금융 또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적합한 기업에게 자금을 제공해주고 관련 교육을 통해 역량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핵심 기구이다.[48][49][50]
궁극적으로 이 행동 강령은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뛰어난 가능성을 인식하고 소액금융의 지속가능한 관행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다. 지나친 상업화 경향과 함께 급속히 증가한 마이크로크레디트 기업은 저마다 각기 다른 규칙을 만들었고 견제가 어려웠다. 일각의 부정적 관행에도 불구하고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마이크로크레디트 제도의 정착과 확산에 관한 실험과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글 안치용 ESG코리아 철학대표, 이주현·장가연 바람저널리스트,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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