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31 11:26최종 업데이트 22.05.3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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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양 옆의 두 나라가 쏘아 올리는 역사왜곡의 표적이다. 일본발(發) 역사왜곡이 '없다'로 압축된다면, 중국발 역사왜곡은 '있다'로 요약될 수 있다. 일본은 자국이 근현대 한국에 해악을 끼친 적이 '없다'고 강조하는 방법을 주로 구사한다. 그에 비해 중국은 과거에 자신들이 한국에 영향을 준 적이 '있다'고 강조하는 논리를 주로 사용한다.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다. 일본은 자신들이 끼친 해악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도리어 한국을 나무라면서 군사대국화를 정당화한다. 지금 일본이 추구하는 군사 노선은 한국 역시 위험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한국과 자국의 연고를 과장하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그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한 개인의 의식 속에서 다른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 두 사람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기 쉽다. 마찬가지로, 한 나라 국민들 사이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 국제분쟁이 촉발될 확률이 높아진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에 사죄·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커져가는 것도 그렇고, 중국인들 사이에서 '옛날엔 저기도 우리 땅이었는데'라는 허황된 관념이 커져가는 것도 그렇다. 이런 인식은 결국 국가권력 차원의 집단행동에 영향을 주기 쉽다.

그런 위험성을 띠는 역사왜곡을 한층 가중시킬 말한 발언이 지난 27일 중국에서 나왔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집체학습(집단학습)에서 시진핑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그에 관한 언급을 내놓았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인 1일 수도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 겸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가 경축 연설을 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화민족이 당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대내외에 선언했다. 2021.7.1연합뉴스
 
탐원공정 심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5월 29일자 <치우스(求是)> 기사인 '시진핑 총서기, 중화문명 탐원공정의 심화에 대해 상세 설명(習近平總書記詳述深化中華文明探源工程)'에 따르면, 탐원공정 심화를 위한 제39차 집체학습에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 상고사의 기원을 탐구하는 이 프로젝트를 한층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프로젝트가 획득한 성과는 아직 초보적이고 단계적이며, 해결을 기다리는 역사적 수수께끼가 여전히 많다"면서 "허다한 중대 문제들이 실증과 연구를 통해 공통 인식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인들은 하나라를 자신들의 최초 왕조로 생각한다. 중화문명 탐원공정은 하나라 이전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중국문명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 그 목표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2018년 5월 28일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관으로 연구성과가 발표된 이 공정을 업그레이드 하라는 것이 시진핑의 주문이다.

시진핑은 학자들의 추가 연구를 주문하는 한편, 지금까지 도출된 성과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킬 필요성도 강조했다. "중화문명을 전승하기 위한 농후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중화문명 탐원공정의 연구 성과를 광범위하게 선전하며, 대중 특히 청소년을 교육하고 인도하여 중화문명을 더 잘 이해하고 일체감을 느끼도록 하며, 중국인의 진취성·기개·잠재력을 증강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를 통해 세계인들이 중국을 재평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를 향해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러우며 존경할 만한 중국의 이미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로 급격히 추락한 중국의 이미지를 탐원공정 성과물을 통해 되살릴 의도도 있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은 1949년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세계화 노선을 추구하던 미국이 방향을 선회해 중국·러시아를 소외시키는 블록화 노선을 추진 중이다. 이로 인해 중국의 입지가 경제·군사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중국 상고사를 활용해 중화민족주의를 북돋우는 방법으로 이런 위기에 대처하는 한편, 이를 국민통합으로 연결시켜 10월 제20차 당 대회 때 집권 연장을 관철시키려는 시진핑의 의중이 27일 집체학습에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중국의 의도는 한국 같은 이웃나라들과의 충돌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탐원공정 자체가 이웃나라들을 자극할 만한 요소들을 많이 담고 있다.

한국 자극하는 요소들

중국공산당 산하 노동자 조직인 중화전국총공회(中華全國總工會)가 발행하는 인터넷 기관지 중공망(中工網)에 게재된 '중화문명 탐원공정 성과 발표, 5천년 문명이 절대 허언이 아니다(中華文明探源工程成果公布 五千年文明絕非虛言)'에 따르면, 2018년 5월 28일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발표한 탐원공정 성과 중 하나는 아래와 같다.
 
"우선, 고고학 자료를 통해 중화대륙 5천년 문명을 실증했다. 탐원공정 연구팀은 지금으로부터 5800년 무렵 황하, 양자강 하류 및 시랴오강 등의 지역에서 문명 기원의 흔적이 출현했다고 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300년 전 이후로는 중국대륙 각 지역이 계속해서 문명 단계에 진입했다.

지금으로부터 3800년 전 무렵에는 중원 지역에서 보다 성숙한 형태의 문명이 형성되어 사방을 향해 문화적 영향력을 발산했으며, 이것이 중화문명 전체 과정의 핵심이자 지도력이 되었다."

약 3800년 전부터 황하 지역의 한족 문명이 지금의 중국 전역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고고학을 통해 실증됐다는 내용이다. 문헌 연구가 아니라 고고학적 탐구의 결과로 그것이 증명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결론은 지금의 중국이 서방세계의 압력으로부터 자국민을 결집시키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신장위구르 등을 중국 한족과 분리시키려는 미국과 서방세계에 맞서, '3800년 전부터 한족이 중국대륙을 이끌었다'는 논리를 앞세워 중국의 분열을 저지하려 할 수 있다.
  
고구려연구재단이 러시아와 공동으로 발굴중인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위치한 발해 성터에서 발해시대 최대 규모의 온돌유적이 발견됐다. 전체 길이가 14.8미터에 이르는 'ㄷ'자 모양인 이 온돌 유적은 보온효과를 높이기 위한 쌍구들 형태를 갖고 있으며 10세기 발해 말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온돌은 오로지 고구려와 발해 유적에서만 발견돼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증명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사진은 발굴현장 책임자인 에브게니야 겔만 러시아 극동대학교 교수가 지난 21일 이날 발견된 온돌유적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2005.8.25 연합뉴스
 
그런 결론은 한국인들을 향한 중국인들의 역사 도발을 더욱 부추기는 소재로도 이용될 수 있다. 고구려나 발해가 중국 역사라고 주장하는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문명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한국은 중국의 영향 하에 있었다'는 식의 엉뚱한 주장들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한국을 자극할 여지가 없지 않다.

이런 흐름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허무맹랑한 주장일지라도 계속 확산되다 보면 중국 정부의 대외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시원적으로 자국 것이라는 인식이 14억 5천만 명의 뇌리에 계속 주입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자민당 정권이 역사교과서 왜곡을 통해 '다케시마는 우리 땅'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는 일이 한국의 독도 수호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고 있는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당나라 역사서인 <당서>의 개정판인 <신당서>의 고구려열전에 따르면, 고구려 침공 전에 당나라 태종(당태종)은 장안성 원로들을 모아놓고 "요동(만주)은 옛날에 중국 땅이었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이것은 당나라의 고구려 침공을 정당화하는 명분 중 하나가 됐다.

1990년 8월에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웨이트를 침공해 걸프전쟁을 일으키기 전에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 '오스만제국(터키) 시절에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같은 행정구역에 있었다'는 이라크 여론이 결국에는 쿠웨이트 침공으로 이어졌다.

중화문명 탐원공정에 시진핑이 불을 지피고 있다. 여기서 도출된 결론들을 대중들에게 확산시킬 것을 시진핑이 주문했다. 그런 결론들이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면 중국의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겠지만, 한·중 역사분쟁이 더욱 심화될 위험성도 높아지게 된다. 중국과 일본 양쪽에서 가해지는 역사 도발의 강도가 앞으로 더 격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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