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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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cookie1412)등록 2022.05.30 09:13
지인이 독성가스 유출사고를 당한 지 열 달만에 죽음에 이르렀다. 지인A는 안전관리요원이었다. 커다란 공장에서 일했지만 그 기업의 직원은 아니었다. 긴급 출동 요청을 받고 달려간 현장에서 독성가스에 전신이 노출되었다. 첫 번째 투입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두 번째 들어간 사람과 세 번째 들어간 A는 뇌사 상태가 되었다. A는 회사 근처에 살고 있었다. 우리 공방 근처라 주말이면 가끔 아기 손을 잡고 놀러 왔기에 그의 사고가 믿어지지 않고 너무나 안타까웠다.

소식을 듣고 우리가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은 A가 협력업체 직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다음에 안 사실은 근무시간이 아닌 때에, 회사의 지시가 아닌 원청 기업의 지시로 달려갔다는 것이었다. 그는 원래 원청 기업에 다녔는데, 너무 과중한 업무 때문에 퇴사하고 협력업체로 옮겨왔다. 막 태어난 아기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였다. 원청에서는 종종 일을 봐달라고 불렀고, 달려가 일을 봐주면 알바 조로 얼마간 주었다. 그 돈은 고향집 부모님의 생활비로 보내졌다. 알바를 거절할 수 없는 이유였던 것 같다. 아주 애매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사고가 났기에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사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저 처분만 바라는 상황이 되었다.

고향에서 연로한 부모가 달려왔다. 첫날은 직원의 안내로 근처 허름한 모텔에서 지냈다. 근처 식당에서 소주 한잔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황망한 상황이라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3일 동안 병원 중환자실로 출퇴근을 하다시피 면회를 다녔다. 원청기업에서 부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숙소를 옮겨주었다. 인근에서는 가장 크다는 호텔이다. 삼시세끼 호텔 뷔페로 식사를 했다. 시골에서 평생 살아온 그들로서는 난생처음 겪는 호텔에서의 호사로 어안이 벙벙했다. 뭔지 모르지만 아들이 살아날 거라는 희망도 커졌다. 운전기사가 딸린 회사차를 타고 병원에 가면 의료진은 매일매일 A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었다. 오늘도 모든 신체지수가 똑같다, 달라진 것 없으니 더 기다려보자,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맥박이 조금 빨라졌으나 나쁜 상황은 아니다,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으나 기대하는 신호라고는 말할 수 없다.... 2주일이 지나고 옆에 나란히 누워있던 "두 번째 들어간 사람"이 가족들 앞에서 사망진단을 받았다. A는 아직 심정지는 아니니 희망을 가져보자고 의사가 말한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중환자실 출입이 금지되었다. 코로나19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루 이틀이 지난 뒤, 원청기업의 부장이 호텔로 와서, "더 있어봐야 아들 얼굴도 볼 수 없으니 일단 내려가 계시면 연락을 드리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협력업체 직원이라도 모든 책임은 회사에서 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내려가 계시라"는 것이다.

A의 부모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병원에 전화하면 아직 면회가 안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왠지 힘 빼기 전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입밖으로 낼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보기에 처음부터 A는 살아나기 힘든 상태였다. "두 번째 들어간 사람"은 가족과 원청기업 간에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되었다. 당시는 김용균 법, 중대재해 처벌법 제정 등의 이슈로 기업들이 한참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일단 시간을 벌어보자는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청기업은 A의 아내와 협상을 시도했다. 아내는 보상을 받고 장례를 치를 때까지 시부모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남편이 험한 알바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원망이 있지 않았나 싶다. 

관련 기사가 났다. "작업자들은 원청 측에서 말해주지 않아 누출액이 위험한 물질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라고 한다. 또 "원청의 총체적 부실로 중대재해가 일어났음이 밝혀진 만큼 중대재해 법에 준한 경영진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영진의 처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스트레이트 기사로, 시민단체의 피켓시위로 몇 번 이슈화하고 나면 사건도, 죽음에 이른 노동자도 잊혀진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개선되지 않는 산업현장에서 사고는 예견되어있고, 연이어 투입되는 노동자는 소모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중대재해 사고가 아직도 빈번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이 슬프기 그지없다.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현실이 분노를 자아낸다. 그들은 위로금 몇 푼으로 어쩔 수 없었음을 변명하면 그만이다.

A의 부모가 올라왔다. 그간 살던 아파트를 정리해 임대주택으로 들어가고 노령연금으로 생활한다고 한다. A가 다니던 회사 사장이 무슨 이유에선지 의료보험 건으로 50만 원을 환입하라는 요청을 해와서, 없는 돈을 만들어 보내줬다고도 한다. A가 안거하고 있는 납골당에 갔다. 아기와 함께 찍은 A의 사진이 있었다. A는 여전히 잘 생겼고, 환하게 웃고 있다. A의 부모는 여기 와서야 손주의 얼굴을 본다며 사진을 쓰다듬었다. 그들은 아들과 남편을 잃고 가족도 해체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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