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아름다워지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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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정(arete)등록 2022.05.25 18:20
독일에서 유학하고 온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생활비에 보태려고 독일 하노버에서 초상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자기 얼굴과 너무 다르다" "다른 사람 같다" 라는 불평을 하도 많이 듣는 바람에 한 달 만에 관뒀다는 이야기다. 얼마전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이목구비를 너무 사실적으로 그렸나? 아니면 보정작업을 안해줬나?" 라고 반문해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하지만 속으로는 지인의 미숙한 그림솜씨 때문이라 생각했던 내 추측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초상화를 통해 인간이 얻고싶어 하는 건 무얼까. 일종의 자기애, 즉 허영심이라 생각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자신을 그린 아름다운 초상화를 보며 늙어가는 존재의 운명을 거부하려는 나르시시즘적 인간을 그렸다. 도리언은 초상화로 그려진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현실세계에서도 초상화처럼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기만하고 세상을 속인다. 하지만, 추레하게 늙은 비참한 모습으로 죽는 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살아 숨쉬는 존재라면 생노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신이 아닌 이상, 육체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할 비법은 없다. 물론 고도의 성형기술이 이를 반박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언이 벌이는 분투가 얼마나 어리석고 헛된 것인지는 지금 읽어도 충분히 공감되는 소설이라 하겠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디오티마는 오직 신 만이 영원토록 동일한 모습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반면, 살아있는 존재는 생노병사의 과정을 통해 즉, 새로 탄생한 구성원이 늙은 구성원을 대체함으로써 영원성을 확보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모습이 실제보다 늙고 추하게 그려졌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를 불사조나 신과 동일하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자기를 그린 초상화에 불만을 품고 초상화를 그린 화가 그레이엄 서덜랜드를 사람들 앞에서 조롱하는 장면을 보았다. 서덜랜드는 "보이는 대로 그릴 뿐"이라고 처칠에게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지만 그 때마다 처칠은 펄펄 뛰며 자기를 축 늘어진 배불뚝이 노인네 아니, 불독처럼 그려놨다고 격분했다. 나는 그런 처칠을 보며 참으로 허영심많은 고집탱이 노인네라고 혀를 찼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이솝> 초상화는 왠지 친근하게 다가오는 그림이다. 존 버거는 그의 책 <초상들>에서 벨라스케스가 관상학 이론에 따라 이솝의 두상을 황소 두상처럼 그렸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솝은 기원 전 6세기 인물이니 상상에 의존해 그려야 하는 만큼, 관상학에서 제시하는 - 황소 두상이 인간 남성의 두상과 가장 유사하다는 – 설에 의존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솝은 그리스에서 노예신분으로 태어나 수많은 우화를 지어내고 노예신분에서 해방되어 철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현자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다. 심술맞아 보이기도 하고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표정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가 바닥에 이런저런 야채거리를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 표정과 많이 닮았다. 아니,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우리동네 알뜰장터에 땅콩팔러 오는 할아버지 표정과도 유사하다. 

 

이솝 (Aesop) 유화 (93 X 180cm),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 디에고 벨라스케스

 
2,500년 전 유럽의 발칸반도에 살던 현자의 얼굴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노인네 얼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니. 이쯤에서, 모든 생물은 자기를 닮은 새로운 개체를 남기고 죽음으로써 영속성을 지닌 불사의 존재가 된다고 한 디오티마의 말을 떠올릴 수 밖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 늙고 추한 사람보다 더 인간적이고 더 선하며 더 지혜로웠던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았다. 그런데 젊고 아름다운 얼굴은 선이고, 늙고 주름진 얼굴은 악이라는 인류의 내재된 편견은 지금도 우리를 끊임없이 부추긴다. 더 젊어지고, 더 아름다워지라고. 그래야 더 성공할 가능성과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일상의 시공간이 온통 미용과 성형광고로 도배되어 숨막힐 지경이 되면, 가끔은 도리언 그레이의 비극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댓가로 도리언 그레이는 정신이 점점 더 사악해지고 황폐해지는 걸 겪어야 했으니,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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