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준비한 자료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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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비판과 견제를 용납하지 않는다. 권력은 사실과 진실을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권력은 난폭하면서도 친절하다. 권력은 앞에서 웃고 뒤에서 보복한다. 권력은 거짓을 참으로 바꿀 수도 있다. 권력은 늘 옳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보자. 동물들은 인간 농장주를 몰아낸 뒤 7계명을 만든다. 그중에는 '다른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따위의 계명이 있다. 경쟁자 스노볼을 쫓아낸 뒤 절대권력자가 된 돼지 나폴레옹은 반기를 드는 동물들을 처단하고, 술을 마시고, 인간을 흉내 낸다.
나폴레옹 일당은 계명을 다음과 같이 슬쩍 바꾸는데, 몇몇을 뺀 동물 대부분은 눈치 채지 못한다.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 동물들을 위하고 동물농장을 더 발전시킨다는 명분이었다.
교묘한 눈속임
권력이 하는 짓이 딱 이렇다. 교묘한 눈속임으로 헷갈리게 한다. 자기들 이익을 도모하면서 '국민'을 들먹인다. 국민을 위해서,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해서란다. 아니, 여보세요. 언제부터 그렇게 국민을 위했다고 그러세요?
"누군가를 위해서 한다"라는 말처럼 인간의 위선과 기만을 나타내는 말도 없다. 자기 업무이고, 자기가 필요해서 하는 일인데 마치 남의 이익을 위해서나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한다. 자기만족을 위한 건데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처럼 꾸민다. 권위의식과 시혜의식의 소산이다.
예컨대 검사나 변호사 업무는 남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냥 자기 일이다. 나라 녹을 받거나 수임료 챙기면서 하는 경제활동이기도 하다. 정의를 추구하고, 억울한 사람 안 생기게 하는 것은 용기나 양심이 아니라 직업적 의무다. 경찰도, 기자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특권층인 검사들은 비리가 발각되면 남다른 행동을 보인다. 휴대전화를 갖다버리거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초기화하거나 바꿔버리고, 통화 내역과 카톡 대화, 메신저 대화를 삭제한다. 나아가 감찰을 방해하고 수사를 막는다.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뭉갠다. 이러면 없는 게 된다. 아닌 게 된다. 그런데 아니라면서 수고스럽게 왜 감추거나 없애는지 모르겠다.
이건 구조적 비리다. 검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의 문제다. 절대권력을 공유하기에, 권력기관 구성원이라는 자신감이 넘치기에 가능한 일이다. 검찰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검동설'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동훈 부조리극
그런 점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한편의 부조리극이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검찰 상층부에서 벌어진 음습한 일들을 폭로했으나 이미 검찰권력이 국가권력으로 고스란히 옮겨진 상황에서 공허한 메아리였다.
압권은 검수완박 궤변. 보완수사권이 유지되고 중대범죄 우선 수사권이 축소됐을 뿐인데, 장관 후보자와 여당 의원들은 검찰이 수사권을 박탈당해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정치인과 공직자 비리가 넘쳐나게 생겼다고 비분강개했다. 돈 없고 힘없는 서민만 피해를 본다는 단골 주장을 빼놓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