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화장실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이야기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을 추진한 활동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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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아(seasson123)등록 2022.06.07 09:57
지난 3월 15일,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성공회대학교(이하 성공회대)에는 국내 대학 최초로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됐다. 기존의 화장실이 성별이 분리되거나 장애의 유무에 따라 공간이 나누어진 형태였다면, 모두의 화장실은 성별과 성 정체성이나 장애유무 등으로 구분되지 않고 누구나 사용 가능한 독립적인 공간으로 설계됐다.

모두의 화장실은 성공회대 정문에서 가까운 새천년관(인문사회관)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는데, 지하1층은 대학식당이 있으며 휠체어 경사로와 계단으로 지상에서도 진입이 가능한 구조다. 완공 다음날인 3월 16일, 성공회대 본부와 제37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준공식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5년이라는 시간 뒤에 있던 그들의 이야기

'모두의 화장실'은 2017년, 총학생회의 공약으로 처음 등장했고 인권친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예산을 받아내는데 성공했지만, 내부의 사정으로 좌절됐다. 이후엔 반인권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약 3년간 과거 속으로 잊혀져가는 듯했다. 2021년에 인권친화적인 분위기를 되찾으려는 움직임과 함께 이 의제가 예산안 심의 통과로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설치를 위해 학내 구성원과 학교본부를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2017년부터 2022년 완공까지의 시간 속에는 기대와 좌절, 그리고 구성원들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모두의 화장실이 설치된 후, 4월 18일에 성공회대를 찾아가 <모두를 위한 모장실 문화 만들기 모임 '모모'>로 활동하는 구성원들을 만났다.

모모 구성원들은 학교가 "인권과 평화로 세상과 연대하는 대학"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그 비전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학교 본부와의 소통하고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투쟁'으로 증명한 '설득'의 힘

활동가들은 지난 5년간의 과정을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진보적인 학풍의 문화가 끊겼다면서,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반대 여론과 혐오표현이 크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한 활동가는 개인에 대한 공격이 심해졌고 관련 증거물을 모았더니 그 수가 몇 백개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익명의 작성자 3명을 만나서 합의하는 과정에서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더니 증거로 모은 게시물의 80%가 지워졌다고 했다.

학교 본부와의 합의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이들은 인권개선협의회를 통해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으나, 결정권자가 불참했고 사실상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했다. 학교에선 반대 학생들을 이유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며 회피해왔고 소통이 어려워지자 활동가들은 직접 행동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학교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릴레이 1인 시위'와 '플래시몹', '현수막 설치' 등을 통해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길 요구한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21일, 학교 본부의 주최로 '대토론회'가 개최되었고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면서, 설치를 추진하기 위해 지속적인 활동으로 학내 구성원을 설득했다. 활동가들은 SNS를 통해서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현장에선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반대의견을 가졌던 학생을 만나 설득했고, 여름방학엔 '손편지'를 썼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선 '모모아카데미'를 통해 전문가 3명의 강연을 진행했고, 대토론회 이후 설치를 기원하는 2번의 촛불 문화제 '콸콸콸 물 내림제'로 학생들의 뜻을 모으는 자리도 마련했다. 이렇게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내 최초로 설립되기까지 그 이면에는 학교 본부와 학내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설득의 시간들이 있었다. 


"이 과정을 만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냈으면 좋겠다."

활동가들은 이 이야기가 노력과 투쟁을 통해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낸 '과정'에 초점이 맞춰졌으면 좋겠다며 모두의 화장실이 가지는 의미가 잘 전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그 과정을 견뎌낸 지금, 그들은 "오히려 기쁨보다 그동안 뜻을 함께 해왔던 사람들이 지쳐서 떠나는 걸 보며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는 무거운 말을 전했다.

우려와 논란에 공감…근본적인 원인과 해결방안 모색

"소수자가 장소를 획득하는 것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시작점"

모두의 화장실은 성중립화장실보다 넓은 의미를 가진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다. 2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을 갖췄고 월경컵을 쓰는 여성이나 장애인 등 소수가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다.

모두의 화장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젠더와 생물학적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중요한 문화적 토대임이 분명하다. 이런 형태의 화장실이 보편화 될 필요가 있지만, 이에 앞서 우려와 오해로 인해 실제 사용을 머뭇거리는 경우도 나타났다.

특히 '불법촬영범죄와 성범죄의 증가'에 대한 우려가 많았는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는 '여성들이 느낄 불안은 성차별적 구조에서 계속 발생하는 성폭력의 문제에 국가와 사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라고 했다. 결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임을 꼬집은 것이다. 활동가들도 두려움과 불안에 대해 공감하고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전예방을 위해 매달 불법촬영 점검을 진행하고, 탐지기를 대여물품으로 선정해 학생들이 상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구비해두었다고 말했다.
 
평등한 문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힘찬 날갯짓
 새롭게 피어나는 봄, 현재 대한민국에는 소수자의 기본권 보장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한 활동가는 '모두의 화장실 이슈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이슈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사회에는 화장실때문에 공간 자체를 활용하지 못하거나 외출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모두의 화장실은 단순한 배설권만이 아니라 자유롭게 공간을 오고 갈 수 있는 이동권, 더 나아가 학교 안에서 학습할 수 있는 권리까지 자연스럽게 보장되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올해 '성미산학교'와 '산청간디학교'에서 모두의 화장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언론 보도 이후 한 공공기관에서 시설 답사를 왔다고 활동가가 전했다. 그들은 국내 대학 내 최초 설립이라는 선례로써 작은 인식의 변화로 시작해 더 나은 문화로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이 변화를 통해 누군가는 이전보다 학교에 편하게 나올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고 그로 하여금 누구나 자유롭게 공간에 머무를 수 있다면, 지금까지 그들이 보내온 5년이라는 시간은 앞으로의 5년, 10년, 그 이후 다가올 날들의 변화를 불러올 힘찬 날갯짓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설치 후 '모두의 화장실'의 이용과 관리
학교는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대부분의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학생들의 발길이 줄었다. 그에 따라 모두의 화장실에 대한 이용 실태와 반응을 모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설치 자체만으로도 직접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직접 보지 않고 상상으로 막연하게 두려워했다면, 눈으로 보고 안전한 시설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화장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모두의 화장실을 모니터링해 온 '모모'는 100% 완성이 아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추후 이용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공부를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불어 꾸준한 모니터링을 통해 불편사항을 받아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화장실 내부에서 닫힘을 눌러야 한다는 안내문을 부착했고 비누도 구비해 놓았다. 또한 아직은 모두의 화장실이 지하 1층에 1개가 설치됐지만, 더 나아가 학교 내에 나머지 한 칸들을 짓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모두의 화장실 설치 이후에도 학내 구성원들의 긍정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모장실'을 상징하는 뱃지와 스티커를 다채롭게 제작하는 등 설득하고 설명하면서 학생들의 마음에 공감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 화장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까?
'특별하게 바라보기 보다는 다른 화장실이랑 다를 바가 없고 이런 형태의 화장실이 더 생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인식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기존의 성별 이분법적인 화장실로 인해 사용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이 일종의 '벽'을 허물게 되었다는 점에서 대단한 일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활동가들은 공통적으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어디에나 있는 당연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노력들이 담아낸 의미와 청사진을 그려나가면서 모두의 화장실이 평범한 화장실로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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