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연령별 당선인 분포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셋째, 한국의 대통령제는 한국 정치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해악적인 제도적 원천으로 지목받아왔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행정부로의 과도한 권력 집중은 세계사적인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민주화 이후에도 권위주의 체제의 유산인 '제왕적 대통령제'를 유지해 과도한 권한을 1인의 대통령에게 부여함으로써 정치의 사인화(personalization)를 초래한다. 또한 입법부 및 사법부가 팽창하는 행정부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실현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정치 개혁의 초점을 선거법 개혁을 통한 다당제 혹은 경쟁적 정당체제의 확립과 대통령 권한 축소에 두고 논의해 온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규제 중심의 선거법을 자유로운 선거운동을 보장하는 선거법으로 전환하고, 대규모 '사표' 양산과 '최선'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강제하는 현행 선거제도를 개정하여 비례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감사원의 국회 이관과 청문 대상의 확대 혹은 상설화를 추진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중앙당 중심의 정당 정치를 극복하고 시·도당 조직으로 분권화해야 하며,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영주와 같은 권한을 누리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정당 개혁이 필요하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유능한 정치인을 육성할 수 있는 초당적 민주시민교육의 제도화와 지방의회에서 정치를 경험하고 미래의 정치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청년인턴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경쟁 상대를 '악마화'하고 적대시하는 낡은 퇴행적 정치문화를 정치적 관용과 상호 존중의 정치문화로 대체함으로써 정당 간 불필요한 갈등을 완화하고, 상호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경쟁적 정당정치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 외부의 충격
정치개혁이 모든 이들로부터 동의를 얻을 수는 없다. 비록 대다수의 정치 공동체 구성원에게 이익을 주더라도 정치개혁으로부터 손해를 보는 이들의 저항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주요 정당들이 기존 정치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점에서 노골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정치개혁을 좌초시키거나 최소화하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에 참여하다가 비례대표 의석을 없애자는 역제안을 했고, 집권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또한 비례의석을 늘리지 않고 미래통합당을 따라 위성정당을 창당하여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정치개혁을 이루려면 시민사회를 포함한 정치권 외부의 충격이 필요하다. 2004년 총선에 앞서 병렬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것이나 선거구 획정의 인구비례 기준 설정이 변경된 것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강제된 것이었다. 기존의 정치제도로부터 소외되어온 군소정당들과 시민사회의 요구 또한 정치개혁의 중요한 동인들이다. 시민의 목소리가 없다면 정치권은 그들만의 목소리를 정치제도에 담는다.
다만 법제화가 필요한 정치개혁이 성공하려면 주요 정당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양당 중심의 기성 정당체제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정치개혁에 공감하는 주요 정당 내부의 개혁파와 함께 협력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들 간에 합의를 이루려면 정치개혁의 방향은 물론 강도와 속도를 완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정치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내어줄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얻을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갈등과 대립이 아닌 협력과 화해가 가능한 '우아한' 정치를 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여야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개혁을 위한 연대는 다른 가치를 가진 타자에 대한 인정과 상호 존중 및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이를 실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