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삶을 어떻게 표현할까

시인과 화가가 포착한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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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정(arete)등록 2022.04.10 15:11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로 저승 여행을 하던 단테는 지옥에서 이런 자들을 보았다. 선악에는 무관심한 채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산 자, 신의 존재를 모르고 산 자, 음란을 저지른 자, 탐식과 재물에 집착한 자, 이단자, 사기꾼, 폭군, 고리대금업자, 아첨꾼, 부패한 성직자, 예언자, 정치인, 그리고 배신자. 이들은 지옥에서 펄펄 끓는 역청 속에 빠지거나 얼음호수에 갇혀 꽁꽁 얼어붙는 고통을 당했다. 단테는 세상 모든 악행의 으뜸을 '배신'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지옥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는 곳은 지하 맨 밑바닥에 있는 얼음 호수인데 이곳에 배신자들이 들끓었다고 기록했으니 말이다. 하긴, 신의를 저버리고 등뒤에 칼을 꽂는 배신자를 두고 우리는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 하지. 가장 무거운 벌을 받을 만하다.

프리모 레비는 그의 시 <천국과 지옥>에서 지옥에 가야 할 자들을 이렇게 나열하고 있다.
"누가 지옥으로 가야되는지 말해주겠다. 언론인과 정치인, 회계사와 재정관, 종교인, 기업경영인과 의사, 수학선생, 고양이, 그리고 쓸데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라고. 고양이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왜 지옥행 목록에 포함됐는지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언론인과 정치인이 언급된 대목에서는 강하게 공감했다. 물론 이들 앞에 '부패한' 이라는 형용사가 생략되어 있음을 나는 안다. 

프리모 레비가 나열한 지옥행 목록에 직업인을 하나 더 추가한다면 나는 법률가를 추가하겠다. 이들의 교만한 행태는 어제오늘 처음 보는 일이 아니어서 문학이나 예술의 거장들은 이들의 추잡스런 행태를 오래 전부터 작품에 남겨놓았다. 먼저 셰익스피어. 그는 모든 법률가를 죽여야 한다는 강성발언을 <헨리 6세>에 남겼다.

"딕: 우리가 첫 번째로 할 일은 모든 법률가를 죽이는 것입니다.
 케이드: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놈들은 죄 없는 어린 양의 가죽으로 양피지를 만들고, 거기에다 무언가를 끼적거려 사람을 죽게 하지.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나."
<헨리6세, 제2부 4막2장>


또 있다. 수필가 찰스 램은 "법률가에게도 어린 시절이란 것이 있었을까?"라는 탄식을 했단다. 오만한 법률가를 보며 순수한 어린 시절조차 보낸 적이 없는 괴물이라 생각한 것 같다. 빅토르 위고는 "법률가의 껍질을 벗기면 사형 집행인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아마도 법률 자체를 유일한 상전으로 모시는 법조인의 비정함을 경멸한 말이리라. 지금도 (위선적인) 법률가들은 난해한 문장으로 증거를 조작하고 정의의 사도인 양 가면을 쓴 채 정의를 농락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활개치는 이들을 단죄하지 않고 정의의 신은 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 

프랑스의 풍자화가 오노레 도미에는 법률가를 묘사하는 데 있어 그 누구도 따라올 자 없는 최고의 법조풍자 화가로 통한다. 12세 때부터 법원에서 사환으로 일했고 평생 송사에 휘말려 법정출입을 했으니 누구보다 법조인들의 진면목을 잘 꿰뚫고 있었을 터.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1832년부터 법률가들을 소재로 한 석판화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 작품들은 지금도 법조풍자화의 최고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립을 지키는 척 무심해 보이지만 변호사의 변론을 듣는 내내 꾸벅꾸벅 졸고있는 판사, 정적을 엄하게 다스리는 건 가슴 아프기 짝이 없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따박따박 말하는 위선적인 검사, 그리고 의뢰인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재판정에서 열변을 토하는 변호사의 모습이 바로 도미에가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이다. 먹이가 있는 곳엔 법률가들이 까마귀 떼처럼 몰려든다고 표현한 것처럼 검은 법복을 입은 법조인이 마치 탐욕스런 까마귀 같다.

 

화난 의뢰인 석판화, 1845년 ⓒ 오노레 도미에

 

게오르게 그로스는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들>이라는 풍자화를 그린 독일 화가다. 1926년 작인 이 그림에는 전후 독일사회의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국회의원, 그리고 성직자의 얼굴이 기괴하게 묘사되어 있다. 성직자로 보이는 살찐 이의 얼굴은 술에 취해 코가 빨갛다. 기업인 혹은 법조인처럼 보이는 뚱뚱한 남자의 머리속에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똥이 가득 차 있고, 정치인처럼 보이는 맨앞의 남자는 맥주잔과 칼을 쥔 채 서있다. 그의 머리속에는 구닥다리 조각들이 들어차 있다. 변기를 모자처럼 뒤집어쓴 이는 피 묻은 신문을 끌어안고 피 묻은 종려나무 잎을 손에 쥐었다. 언론인처럼 보인다. 이렇게 혐오스러운 자들이 사회의 주축이 되어 버티고 있다 생각하니 그림을 보는 내 속이 느글느글거린다. 

 

사회의 기둥들, 게오르게 그로스(George Grosz, 1893~1959), 1926년 ⓒ 게오르게 그로스

 

프리모 레비는 시 <천국과 지옥>에서 천국에 가야 할 자들을 이렇게 나열하고 있다. 
"천국으로 가야 할 사람들도 말해주겠다. 아이들을 비롯한 구두닦이 소년들과 연인들, 어부들과 철도노동자들, 와인감별사들과 병사들, 러시아인들과 발명가들, 말들과 닭들, 그리고 새벽 출근전차에서 하품하며 조는 사람들"이라고.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들은 바로 이런 이름없는 노동자들이 아닐까. 이들이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주인이 된다면 좋겠다. 교만한 정치인, 부패한 법조인, 위선적인 종교인, 탐욕스런 기업인, 부정직한 언론인이 아니라.

베아뜨리체의 인도로 천국의 계단에 오른 단테는 그곳에서 이런 영혼들을 보았다. 폭력 때문에 서약하지 못한 자, 아름다운 이름을 구한 자, 사랑으로 불탔던 자, 지식인, 믿음을 위해 싸운 자, 정의를 행한 자, 관조하는 생활을 한 자, 그리고 천사들을. 단테는 천국의 영혼들이 헤쳐모이기를 반복해 그려내는 글자를 보고 천국여행을 마친다. "DILIGITE IUSTITIAM, QUI IUDICATIS TERRAM" 이 라틴어는 "정의를 사랑하라. 이 땅을 다스리는 자들이여"라는 의미다. 세상을 떠받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슴에 간직해야 할 구절이기도 하겠다. 
  천국과 지옥 
 
누가 지옥으로 가야되는지 말해주겠다.
미국 언론인들과 정치인들, 회계사들과 재정관들
종교인들, 기업 경영인들과 대부분의 의사들
수학선생들과 고양이들
그리고 쓸데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
 
천국으로 가야할 사람들도 말해주겠다.
아이들을 비롯한 구두닦이 소년들과 연인들
어부들과 철도노동자들, 와인감별사들과 병사들
러시아인들과 발명가들, 말들과 닭들
그리고 새벽 출근전차에서 하품하며 조는 사람들.

:프리모 레비, 《살아남은 자의 아픔》, 이산하 편역, 노마드북스, 2011,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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