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올바른 교과서'라고 명명, 표현을 바꿔 행정예고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가장 왼쪽이 이배용 편찬심의회 부위원장. 2015.10.12
이희훈
친일 행위 뺀 김활란 평가
그의 역사 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친일파 김활란에 관한 논문에서 잘 드러난다. 이화여대 선배이기도 한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총장을 평가한 '김활란, 여성교육·여성활동에 새 지평을 열다'라는 논문이 그것이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활동기간(2005~2009) 중인 2008년에 <한국사 시민강좌>에 실린 이 논문을 읽다 보면, '눈에 띄는 것' 한 가지와 '눈에 띄지 않는 것' 한 가지를 접하게 된다.
눈에 띄는 것은 '1948년 건국'이 두드러지게 강조됐다는 점이다. 1945년 해방 이후를 설명하는 부분들에서 "대한민국 건국", "신생국가", "건국 사업", "건국의 동력", "건국의 기초", "건국의 주춧돌" 같은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논문에서 그는 친일파 김활란에 대한 평가에서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을 빠트렸다. 이것이 '눈에 띄지 않는 것' 한 가지다. 김활란의 여성운동과 정치·외교 활동은 상세히 서술한 반면, 그의 친일 반민족행위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활란은 열심히 친일 활동을 했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국민총력조선연맹·임전대책협의회·흥아보국단·조선임전보국단 등에 참여해 군국주의 침략전쟁을 도왔다. 또 청년들을 대일본제국의 전사로 만들기 위한 조선청년단에도 가담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모순된 행적을 남겼던 것이다.
논문에서 이배용은 "김활란은 여성의 지위 향상과 사회 발전을 중심에 두고 여성의 정치 참여, 사회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여성 활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친일반민족행위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또 "해방과 대한민국의 건국·발전에 즈음하여 김활란은 시대적·국가적 요청에 부응하여 새로운 여성교육을 이끌어 나갔지만, 그 저변에는 민족교육의 실행과 한국 여성의 인간화라는 소명의식이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김활란이 "민족교육의 실행"에 이바지했다고 하면서도 그가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에 부역한 사실은 거론하지 않았다. 참고해야 할 요인들을 전부 참고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참고하는 데 그쳤던 것이다.
이배용은 김활란의 일제강점기 활동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중요한 것을 빠트렸다. "김활란이 여성단체를 조직하고 그 '힘'을 경험한 것은 1922년 YWCA를 결성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근우회에서도 활동하였다"라고 한 뒤 곧바로 "해방 이후 김활란은 본격적으로"라는 표현을 써가며 해방 이후에 대한 서술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