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자는 제2의 광해군이 될 것인가?

무속 논란과 교하 천도설을 중심으로

검토 완료

박청용(yong3811)등록 2022.03.21 17:59
 
취임도 하기 전에 윤석열 당선자는 청와대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국민은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청와대는 풍수지리적으로 터가 안 좋고 청와대에 들어간 역대 대통령들이 불운했다는 무속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설이 항간에 파다하다.
이와 유사한 역사적인 사례가 있으니 바로 광해군 시대의 교하 천도설이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궁궐을 복원하는 것은 백성에게는 큰 부담이었으나 광해군은 강행했다. 창덕궁 재건이 완성되고 전각이 복원되어도 광해군은 잡다한 핑계를 대며 들어가지 않는다. 임시 거처인 비좁은 행궁(경운궁, 현재 덕수궁)에 수년간이나 머물고 만다. 신하들이 복구된 창덕궁에 들어가기를 수없이 간청해도 왜 그리 창덕궁에 들어가는 것을 꺼렸을까? 창덕궁이 불편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풍수지리적으로 해가 되는 곳이라 단종과 연산군이 창덕궁에서 폐위되었기에 광해군이 꺼렸다는 설이 전해진다.
서자로써 어렵게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왕권이 위협을 받을까 봐 극도로 불안감에 젖어 있었던 듯하다. 증거도 없는 모반 사건을 조작 확대하여 임해군과 어린 영창대군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불안한 심리 상태의 광해군에게 이이첨 등 심복만이 아니라 술관(음양. 점술, 풍수를 보는 풍수지리가)이 있었으니 바로 이의신이다. 실록의 내용을 보면 광해군은 술관 이의신을 총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술관 이의신이 광해군 제4년에 상소를 올렸다.
[창덕궁 안에는 왕실을 위한 내탕고와 약방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길목은 종묘로 통하는 기와 맥이 흐르는 곳입니다. 그 건물이 가장 긴요한 맥을 막고 있는 형상입니다. 산맥의 흐름을 끊고 억누르는 형국이라 매우 해가 됩니다]
이런 상소에 광해군은 과인도 술관인 그대의 말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창덕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미적거렸을까? 대선 과정에서 끊임없이 등장한 윤석열과 그 가족의 무속 논란과 청와대에 절대로 안 들어가겠다는 의지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것일까?
이것만이 아니라 이의신은 상소문에서 도성의 왕기(旺氣)가 이미 쇠하였으므로 도성을 교하현(交河縣)으로 옮길 것을 주장한다. 이에 왕이 동의하여 예조에 내려 의논토록 하였다.
<광해군일기[중초본] 59권(광해 4년 11월 15일. 1612년)>
 
윤석열 당선자는 국민 여론이나 전문가의 공청회도 없이 1주일 만에 용산 국방부 자리에 집무실을 삼겠다고 전격 선언해 버렸다. 천문학적인 비용만이 아니다. 지금 급하게 집무실을 꾸미는 데 신경을 쓸 사안인지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
광해군은 임란 이후에 핍진한 백성을 돌보지 않고 궁궐 공사에만 몰두했다. 수천 채의 민가를 허물면서 궁궐 공사를 강행하고 백성을 부역으로 내몰았다. 이미 완공된 창덕궁에는 들어가지도 않았고 경복궁 등 다른 궁을 더 지으려 했으니 백성들의 불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더구나 술관 이의신의 말을 믿고 교하로 천도할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전후에 가장 시급한 것이 백성이 아니라 자신이 거처할 화려한 궁궐과 힘들게 얻은 왕권을 지키기 위한 것뿐이었다.
선거 운동 기간에는 코로나 상황으로 어려운 자영업자를 살려야 한다고 정권을 호되게 비판하더니 당선자가 되자 집무실 이전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현대판 광해군을 보는 듯하다. 코로나19로 힘겨운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민생을 돌보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국가 안보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자신의 집무실을 위해 국방부 청사를 뿔뿔이 흩어 옮긴다니 우려의 목소리들이 크다. 청와대로 들어가면 아주 간단하고 국민도 좋아하는데 취임도 하기 전에 쫓기듯이 서두르는 모습이 광해군을 보는 듯 불안하기만 하다.
이의신이 주장되고 광해군에 의해 촉발된 교하 천도 논란에 신하들은 결연하게 반대를 한다. 예조 판서 이정귀(李廷龜)은 풍수와 무속에 의한 잘못된 판단은 아닌지 강력하게 반발한 것을 실록을 통해 볼 수 있다.
[삼가 이의신의 상소를 보건대,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들이 사람을 현혹시킬 뿐 무슨 뜻인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풍수(風水)의 설은 경전(經傳)에 나타나지 않은 말로 괴상하고 아득하여 본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참위(讖緯)와 여러 방술(方術)의 근거 없는 말들을 주워 모아 까닭도 없이 나라의 도성을 옮기자 하니 역시 괴이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한양의 도읍은 화악(華岳)을 의거하여 한강에 임하였으며 지세는 평탄하고 도로의 거리는 균일하여 주거(舟車)가 모두 모이는 중심지로서 천연적인 비옥한 토지와 굳건한 성곽 등 형세상의 우수함은 나라에서 제일이니 이야말로 전후의 중국 사신들도 모두 칭찬한 바였습니다. 우리 성조(聖祖)께서 나라를 세우려고 터를 마련하면서 여러 곳을 살펴보고 여러 해를 경영하였으나 끝내는 이곳에 정하였으니, 깊고 먼 계략을 어찌 미미한 일개 술관과 비교해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 2백 년이 되도록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였으며 다스림은 융성하고 풍속은 아름다웠으니 실로 만세토록 흔들리지 않을 터입니다. 복지(福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왜 도성을 옮기면 안 되는지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 논리적으로 항변하고 있다.
[그가 이른바 교하는 복지이고 한양은 흉하다는 말에 대해 세상에 알 만한 자가 없으니 누가 능히 가리겠습니까만, 당당한 국가가 어찌 일개 필부의 허망한 말을 선뜻 믿어 2백 년의 굳건한 터전과 살고 있는 수많은 우리 백성으로 하여금 갑자기 일거에 떠돌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 소장이 들어오면서부터 사람들이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서로 뜬소문에 동요되어 더러는 '성상께서 이 말을 믿는다.' 하고, 더러는 '새 궁궐에 나가지 않는 것은 이 말 때문이다.' 하여, 원근이 모두 놀래고 현혹되어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이단(異端)이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일이 예로부터 그러했으니, 고려 말엽에는 요승(妖僧) 묘청(妙淸)이 음양의 설로 임금을 현혹하기를 '송경(松京)은 왕업이 이미 쇠퇴하였고 서경(西京)에 왕기가 있으므로 도읍을 옮겨야 한다.'고 하여 드디어 새 궁궐을 서경임원역(林原驛)에 지었으나 끝내는 유참(柳旵) 등의 변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예전의 고사도 이와 같은데, 어찌 경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광해군일기[중초본] 59권(광해 4년 11월 15일. 1612년)>
음양설과 풍수지리에 의한 천도설은 있을 수 없다고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서 반박하고 있다. 이의신이 인사(사람의 일)가 가지런히 되지 않는 것은 그 원인이 기수(氣數. 길흉화복의 운수)에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망국(亡國)의 말이며 합당치 않는 천도는 위험한 일임을 직설했다.
그러나 광해군은 예조판서에게 대답한다.
[이의신의 방술이 정미하다고 내가 지나치게 믿는 지의 여부를 예관이 어떻게 아는가. 새 궁궐로 곧 옮기려고 했으나 내전이 상(喪)을 당하였고 역옥(逆獄)이 계속 일어나므로 나라에 일이 많아 여기까지 미칠 틈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터무니없고 근거도 없는 말로서 이 말을 믿는다고 임금을 지척하고, 또 '법궁에 나가지 않는 것이 이 말 때문이다.' 하니, 너무 놀랍다. 앞으로는 이러한 등의 말을 경솔하게 내지 말도록 하라. 소장의 끝에 있는 회계의 일은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상의하여 의계(議啓)토록 하라]
광해군은 내가 술관의 말을 지나치게 믿는지 여부를 예관이 어찌 아느냐고 반문한다. 앞으로는 이러한 등의 말을 경솔하게 내지 말도록 하라고 꾸짖는다. 윤석열 당선자도 풍수지리나 무속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는데 집무실을 옮기는 진짜 의중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광해군의 변명처럼 들릴 뿐이다.
광해군은 교하로 천도를 준비했으나 교하 지역은 도읍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었다. 신하와 백성들의 반대와 임란 후 피폐한 재정 때문에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풍수지리를 주장한 술관에 의해 국론만 분열되고 결국 무산되었다. 광해군의 무리한 궁궐 재건과 교하 천도 논란은 나중에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광해군이 폐위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었다.
청와대를 최대한 개방하여 국민이 자유롭게 드나들면 되는데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긴다니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절박한 국민들의 민생을 뒤로하고 왜 집무실 이전에 몰두하는지 국민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절박하고 타당한 이유가 없음에도 언론을 통해 미화하고 국민을 호도하며 강행할 것인지? 역사는 흐르고 반복된다는 말이 있는데 민의와 동떨어진 권력의 독단은 폭군 광해군처럼 될 수 있음을 역사를 통해 교훈 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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