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적게 내고 적게 받고 있다. 소득대체율 인상이 없으면 앞으로도 저연금 문제가 크게 개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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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인상도 필요하지만 보험료 인상만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보험료를 올리면 자연스레 세대 내, 세대 간 소득재분배가 개선된다. 하지만 적정 소득대체율 설정 없는 대폭적 보험료 인상은 오히려 모든 계층을 고부담 상태로 만들게 된다. 국민연금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보험료율을 현 9%에서 17%로 8%P 올리면 1985년생 이후 수급자는 모든 계층이 고부담 상태가 된다.
보험료를 올리면 인상 결정 이후 가입기간에 대해서만 부담이 늘어난다. 소급 인상이 아니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은 이미 완성된 기여-급여 불균형에는 대응할 수 없다. 물론 기금운용 수익이 일부 이에 대응할 수 있다. 기금운용 수익은 2017년 당시 2021년까지 향후 5년간 약 141조 원을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2배에 가까운 277조 원이나 됐다.
하지만 변동성이 있는 기금운용 수익으로 이미 완성된 모든 기여-급여 불균형을 다 해소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 관리운영비 국고 지원, 크레디트 사전 지원 등 현세대 재정투입도 병행해야 한다. 건강보험도 현재 보험료만으로 제도 내 수지균형을 맞추지 않고 14.3%의 국고를 지원받고 있다.
보험료는 점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 보험료를 급격하게 인상하면 오히려 저소득 지역가입자,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들이 가입·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기에 보험료는 점진적으로 인상해야 하고, 보험료 지원 등 제도적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위기 상황에 놓인 분들이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비정규직 가입률에 대한 오해
이미 국민연금은 중추적인 노후소득 보장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와 역진성을 언급할 때 자주 인용되는 "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이 88.8%인 데 비해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38.4%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에는 상당한 오해가 있다.
이 수치엔 애초에 국민연금 가입 대상이 아닌 고령자가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수치는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로 파악됐는데 조사대상이 만 15세 이상이다. 예컨대 비정규직이면서 고령자인 경우엔 애초에 국민연금 가입대상이 아닌데도 미가입자 61.6%에 속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실제 고령자 중엔 비정규직 비중이 높기도 하다.
국민연금은 지역가입이라는 제도가 있어 자영업자뿐 아니라 사용자를 찾기 어려운 분들도 지역가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역가입자까지 포함한 2021년 기준 가입 연령대(18~59세)의 정규직 가입률은 96.1%이고 비정규직 가입률은 69.7%이다. 비정규직도 10명 중 7명은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는 셈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정규직 고소득자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전 국민의 일정 노후소득을 채워주는 보편적인 제도로 보는 것이 맞다. 국민연금이 안정적 노동자만을 위한 차별적 제도라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불안정 노동자도 국민연금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테면 5인 미만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로 부당해고에 노출되고 수당, 휴가, 괴롭힘 방지 규정 등을 적용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근로기준법이 안정적 노동자만을 위한 차별적 제도이기 때문에 축소해야 하는가? 오히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상 기본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논리는 국민연금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신기루에 기댈 수 없는 노후
지난 대선 기간에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중하위 계층에게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상위 계층에게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보장하는 다층 연금체계를 내걸었다. 국민연금의 역할이 축소될 경우 상층은 퇴직연금, 하층은 기초연금에 의지할 수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단순히 국민연금의 제도 내 재정수지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기초연금이나 퇴직연금으로 대체해서도 안 되고 대체할 수도 없다. 다층 노후소득 보장체계 내에서 국민연금은 빈곤예방의 중심적 기능을 하면서, 전 국민의 노후소득을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