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하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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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규(kimsea6)등록 2022.03.11 20:57
                                          정의(正義)는 하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시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나라 밖이 어수선하다. 미국은 연일 러시아를 비난하고 나토 동맹국들로 맺어진 서유럽 국가들도 비난 대열에 동참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및 군사 제재도 고려되고 있다. 공군력 부재로 러시아 공군의 공습에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는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폴란드는 러시아산 미그기를 내놓았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비정치 무대인 스포츠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독일 축구팀 샬케04는 600억 원이 넘는 러시아 기업의 후원 계약을 취소했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 축구 스타 레반도프스키도 분데스리가 경기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단 유니폼을 입고 뛰더니 스폰서를 맺은 중국기업 화웨이가 러시아의 침공에 침묵한다며 스폰서 계약을 파기했다. 유럽의 축구팀에서 뛰고 있는 수많은 러시아 선수들은 공공의 적이 되었으며, 러시아 팀에서 뛰는 외국 선수들은 계약을 파기하고 퇴단할 것을 고려한다고 한다. 서유럽 국가들의 러시아 제재로 러시아 기업가가 운영했던 인기 축구팀 첼시의 경영권도 반강제로 박탈당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세계적 여론에 반하는 스포츠계 인사가 있다. 세르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농구 감독 젤코 오브라도비치 감독이 그 사람이다. 젤코 오브라도비치 감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전 세계의 이 같은 태도는 1999년에는 보지 못했던 일이다."
 
1999년 세르비아는 유엔과 나토의 공격을 받았다. 세르비아의 코소보 학살에 대한 응징이었다. 78일 동안의 공습으로 공항과 병원, 학교를 비롯한 주요 공공기관과 민가들이 폭격을 당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사상했다. 젤코 오브라도비치 감독이 떠올린 '1999년'은 이 사건을 말한다.
 
전쟁은 그것이 정의(正義)로 포장되었든 그렇지 않든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은 헛된 욕망, 잘못된 욕망에서 기인한다. 그와 같은 욕망에만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모든 일은 '외교'라는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평화(平和)보다 이익(利益)을 우선한다.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생각의 차이나 오해, 종교적 갈등도 결국 따져 보면 '이익(利益)'이라는 단어로 함축된다. 자국이나 민족의 이익에 따라 발생한 갈등은 대화보다는 폭력적 방법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이나 폭력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정의로운 편, 약자의 편에서 불의한 세력을 규탄하는 것이 마땅하다. 작금의 세계로 보면 러시아는 악한 세력이고 우크라이나는 약자이며 미국과 서방세계는 정의로운 세력으로 구분된다. 높은 도덕성을 앞세워 불의한 세력을 규탄하고 약자를 도우려 하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미국과 서방 언론들도 약자 우크라이나를 도우려는 폴란드를 비롯한 인접 국가의 노력, 목숨을 걸고 조국을 구하겠다며 국경을 넘어가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영웅담을 쏟아 놓고 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자. 미국이 자유세계 수호를 명분으로 베트남전쟁을 일으켰을 때, 자국과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걸프전을 일으키고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대중국 포위전략의 일환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우리는 어떠했는지. 높은 도덕성을 내세우고 문명국가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서유럽 국가들은 왜 미국이 주도하는 추악한 전쟁마다 참전하는지. 심지어 미국은 다른 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비난하면서도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는 미국의 저의는 무엇이며, 자국 기업에게 불리한 환경문제나 생태계 파괴 문제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과 서방세계가 하면 정의(正義)이고 다른 국가가 하면 '악(惡)'이란 말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해하려면 두 나라 사이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는 한 핏줄이다. 그들의 뿌리는 9세기경 동슬라브 민족이 건국한 키에프 공국에서 기원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가 중심이었다. 그러다가 13세기 몽골 지배받을 때 모스크바 일대가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라는 민족의식, 국가 의식은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14세기 중반 몽골 지배에서 벗어난 뒤에도 폴란드와 튀르크, 몰도바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는데, 16세기 초 '대장 부리바'라는 영화로 유명한 코작크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전쟁을 일으키면서 민족의식이 성장했다. 코자크들의 독립전쟁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7세기 중엽 페레야슬라브협정이 체결되면서 러시아에 합병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국토의 대부분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한편 일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은 20세기 초반 다시 발생했다. 1905년 러시아에서 제1차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우크라이나 노동자, 농민들도 대규모 봉기를 일으키면서 독립의 열망이 다시 불타올랐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때 우크라이나에도 인민대표회의가 결성되면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공화국'이 선포되었고, 1차대전 뒤에는 동부지역에서는 폴란드와 헝가리를 상대로 독립투쟁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러시아혁명으로 수립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은 우크라이나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1921년에 수립된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공화국도 제한적 외교주권만 인정되는 소련의 위성국가였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지배와 억압을 받으면서 큰 고통을 겪었다. 스탈린 시대에는 협동농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8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약 6백만 명이 해외로 이주했다. 2차대전 후 로켓, 전자, 화학, 조선업을 중심으로 중화학공업이 발전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보다는 소련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1991년 소련연방이 붕괴되자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독립 후에도 국내정세는 안정되지 못했다. 대통령과 관료들은 부패했고 경제는 여전히 러시아에 예속되었다. 국토를 가로질러 러시아의 거대 송유관이 지나갔어도 불만을 표출할 수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14년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헌법개정안이 부결되자 친서방 성격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었다. 더구나 같은 해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는 친러성향의 일부 세력이 봉기하여 분리독립을 시도하면서 국내정세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14년 6월 러시아, 프랑스, 독일, 우크라이나가 만나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방안을 협의하고 노르망디 포맷을 결성했으며 이후 우크라이나 EU 간 제휴 협정도 체결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동부 2개 주와 우크라이나, 러시아 간에 제1차 민스크 협정이 체결되었고, 2016년에는 EU와 포괄적 자유무역협정(DCFTA)도 체결되었다. 2018년에는 러시아 해군과 우크라이나 해군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충돌은 이듬해 해결되었지만 러시아에서 벗어나려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 친러시아 세력의 분리독립운동,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으로 인한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번 러시아 침공은 기업가 출신의 전임 프로센코 대통령이 당선되면서부터 예견되었다. 프로센코는 강력한 친서방정책을 실시했으며 미국과 캐나다군의 우크라이나 주둔을 허용했다. 2019년 코미디언 출신의 젤렌스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친서방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젤린스키는 서방세계와 경제적 동맹뿐 아니라 나토가입을 통한 군사적 동맹까지 체결하기를 원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우크라이나와의 군사적 동맹 유지가 반드시 필요했으며, 러시아의 이익과 결부된 중화학공업과 송유관까지 우크라이나에 두고 있는 러시아를 크게 자극했다.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 내 여러 세력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러시아와 미국의 이익(利益), 서유럽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판날 것이다. 서방세계는 강력한 네트워크를 갖춘 서방 언론을 이용해 여론몰이에 나섰고 러시아를 약자를 억압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악(惡)의 축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정치적 이해관계, 군사적, 경제적 이유로 시작된 전쟁이 정의(正義)와 불의(不義)의 도덕적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그다음 단계는 유리한 국면을 조성한 미국과 서방세계가 경제제재와 같은 비군사적 압력을 가하다가 굴복하지 않으면 군사적 개입을 시도할 것이다.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서방세계가 승리할 경우 우크라이나는 예정대로 나토에 가입하여 서방세계의 일원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나토와 국경을 맞대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며, 푸틴이 추구하는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시기의 위대한 러시아 회복'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과거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던 역사적 갈등의 데칼코마니다.
 
전쟁은 근본적으로 악(惡)하고 평화는 선(善)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서 러시아는 악(惡)이며 우크라이나는 선(善)이 분명하다. 하지만 러시아를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며 자국의 이익(利益)을 도모하려는 미국과 서방세력도 결코 선(善)이라고 말할 수 없다. 미국과 서방세계가 러시아를 비난하고 제재를 가하려면 과거 자행했던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 침공,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먼저 사죄해야 한다. 전 세계가 평화(平和)를 위해 국제적으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핵확산방지조약, 기후변화와 관련한 일련의 조약에서 비겁하게 행동했던 일련의 태도를 반성해야 한다. 나토의 세르비아 침공, 아직도 사죄하지 않는 벨기에의 콩고 원주민 학살,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역사적으로 자행했던 만행도 깊이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정의(正義)다.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202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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