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베라크루스주 코아차코알코스에서 경찰이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은 엘 카바요 블랑코 바 앞을 순찰하고 있다. 2019.8.28
연합뉴스
지난 1월 말 마약 카르텔 간 충돌이 일어나면서 연일 수 명씩 사람이 죽어 나가고 3천 명이 넘는 군 병력이 투입되었음에도 진정은커녕 주지사를 죽이겠다는 메시지가 분분한 와중이니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만 살 것 같은 시골의 작은 마을 안에서도 누가 약을 파는지 누가 약을 사먹는지, 그리고 그들 위에서 누가 마약과 돈과 무기를 주무르고 있는지 세 살 어린아이라도 뻔히 아는 그런 시절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세상으로부터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학교에서는 이 바닥에서 마약 축에도 끼지 못하는 '해피브라우니'를 건네 권고 자퇴를 당하고 또 그것을 먹어 심리 상담을 받는다 하니, 학교의 안과 밖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세상의 간극이 아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쪽과 저쪽의 서로 다른 세상을 오고 가며 살아간다.
가끔, 아니 종종, '도대체 그런 곳에서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사실, 위험하다. 특히나 요즘 같으면 더 그렇다. 항시 주변을 둘러봐야 하고, 차가 신호등에 정차할 때 옆 차를 보지 말아야 하고, 어디든 실내에 들어가게 되면 혹시 총알이 날아들 경우 어느 쪽 구석이 더 안전할까 미리 창의 높이와 벽의 각도를 계산해 두는 것이 몸에 뱄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멕시코의 또 다른 단면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지독한 폭력의 이면에 뜻하지 않은 아름다움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과장의 걱정 섞인 통화 내용을 들으면서 한국이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학생이 마약이나 마리화나를 소비한다는 가정도 않겠지만, 혹여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학교의 반응이 어떠할까 궁금해졌다. 어쩌면 학교가 알지 못한 채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성인이니까.
폭력의 이면
분명 이곳의 시스템은 한국과 다르다. 한국에 비해 형편없이 뒤떨어진 부분도 있지만, 선진적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학과엔 교수와 학생 사이를 연결하는 학사 코디네이터와 심리상담사가 상근한다. 학생들의 학사 전반에 코디네이터가 상시 대기하며 도움을 주고 우울감이나 갈등에 심리상담사가 세세하게 관여한다. 그렇다고 우리 학교가 비싼 수업료를 내는 사립대학교는 아니다. 한 학기 약 8만 원 정도의 수업료를 내는 주립대학교다.
며칠 전 학사 코디네이터로부터 강의실 변경에 관한 메일을 받았다. 내 수업에 배당된 강의실이 원래는 1층이었는데, 2층으로 변경되었으니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더러 학기 초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강의실이 바뀌는 경우는 있지만, 학기 중간에 강의실이 바뀌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럼에도 내 수업뿐 아니라 여러 교수들의 강의실이 변경된 이유는 한 명의 학생 때문이었다.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 한 명이 임신을 했는데, 임신 초기라 태아의 상태가 불안정하고 앞으로 몸이 무거워질 것이기에 그 학생이 듣는 모든 수업을 1층으로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수업이 2층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교수들뿐 아니라 학생들도 학기 중간에 강의실을 변경해야 했지만, 그 어디서도 불만은 없었다. 승강기 없이 2층으로 이루어진 강의동 건물에서 임신으로 몸이 약해진 학생 한 명을 위해 우리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마음의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