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지난 2021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 발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사정이 이런데도 대중의 분노에는 온도 차가 느껴진다. 정씨에 대해서는 마녀사냥의 광기가 번뜩일 정도로 비난을 퍼부어댔지만, 김씨에 대해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사과로 퉁치려는 분위기다. '진보의 위선'을 매섭게 때렸던 지식인 나부랭이도 마찬가지다. 기이한 침묵의 카르텔이요 이중잣대다.
나아가 김씨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특히 제도적 맹점에 따른 입시 스펙 비리를 공정 가치의 훼손으로 여기며 분노한 젊은 세대 일부에서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 이채롭다. 제대로 몰라 그런다면 이해할 여지가 있지만, 알면서도 그런다면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그다지 신뢰할 게 못 된다.
공익과 상관없는 사생활은 제외한다 쳐도, 장관 후보자 부인은 그토록 혹독하게 검증하면서 국민적 단죄 대상으로 삼고, 그보다 훨씬 위상이 높은 대선후보 부인은 후보 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검증 대상이 아니라거나 적당히 넘어가자는 건 대체 무슨 논리인가? 역대급 궤변이자 내로남불의 극치다.
김씨는 여론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언론인, 지식인의 이중성에 내심 감탄했을지 모른다. 아마도 자기확신이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조국 사건 이후 공정의 화신으로 둔갑한 윤 후보가 부인의 '거짓 이력'에 대해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라고 감싼 것도 참고할 만하다.
[네 번째] 인맥의 힘
네 번째는 인맥의 힘이다. 편법과 불법으로 부동산 재산을 불렸다는 의혹에 휩싸인 어머니 영향을 받아선지 김씨는 사람 사귀는 수완이 좋았다. 검사, 기업인, 무속인, 사업가 등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인맥을 가꿔왔다.
법이나 규정에 가로막힌 일도 인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일찍이 터득한 것 같다. 어머니가 성남 도촌동 땅 매입 시 통장잔고증명서를 위조해준 대출 중개업자 김모씨는 그녀의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동기로 코바나컨텐츠 감사이기도 했다.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으로부터는 장외매수, 신주인수권 매입, 계열사 주식 액면가 인수 등 갖가지 특혜를 받았다. 권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주가조작을 벌이던 2010년 안팎에 미심쩍은 거래도 있었다. 도이치모터스는 코바나컨텐츠 전시행사의 최다 협찬사이기도 했다. 김씨가 대표를 맡은 2009년 이후 2019년까지 10년간 열린 12회 전시회 중 9회나 협찬했다.
김씨 모녀의 사금고라고 불릴 정도로 자주 특혜성 대출을 해준 신안저축은행 대표 박모씨도 그녀의 경영전문대학원 동기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박씨와 윤 후보와의 '간접 인연'이다.
2011년 대검 중수1과장이던 윤 후보는 저축은행 비리를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박씨는 2012년 7월 금융감독원에 의해 대출 비리로 고발당해 대검 중수부 조사를 받았다. 그 무렵 윤 후보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옮겨갔다. 이듬해 1월 검찰은 박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지난달 개정증보판으로 재출간한 <윤석열과 검찰개혁>(7부 윤우진과 김건희, 그 후)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검찰 인맥도 돋보인다. 유럽 여행까지 함께 다녀올 정도로 가까웠던 양모 검사는 이런저런 소송에 시달린 모녀의 든든한 뒷배였다는 의심을 받는다. 김씨가 "가족 같은 사이"라고 밝힌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은 지속적으로 전‧현직 검사들을 관리했다. 회장 다이어리에는 양 검사와 윤 검사가 자주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리던 윤 검사와의 결혼을 인맥 관리의 결정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섯 번째]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김씨는 문 대통령을 남편의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처음 만난 게 아니다. 그녀와 문 대통령의 인연은 8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12월 코바나컨텐츠는 '점핑 위드 러브(Jumping with Love)'라는 사진전을 열었다. 이 행사에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문 대통령이 참석했다. 대선 패배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을 때다. 윤 검사는 국정원 댓글 사건 항명 파동으로 징계를 앞둔 상태였다. 뒷날 동맹과 배신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의 씨앗이 코바나컨텐츠였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그로부터 3년 반 후인 2017년 5월 청와대에 입성한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활약한 윤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다. 2년간 적폐청산 칼을 휘두른 윤 검사는 2019년 7월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식에 김씨가 참석한 모습은 방송화면이나 사진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