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에 대한 짧은 생각

살아가기

검토 완료

홍윤정(arete)등록 2022.02.03 14:13
어린 고양이 두 마리가 아파트단지 산책로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가을이다. 산책하다 우연히 덤불 덮인 땅속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고 그 뒤로 덤불더미 근처에 사료를 놓아주니 냄새를 맡은 고양이들이 하나씩 머리를 내밀고 기어나와 먹이를 먹었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니 걱정이 앞섰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를 저 어린 고양이들이 잘 버텨내야 할 텐데. 걱정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는지 어느 날 누군가가 나무상자를 가져다 담요를 깔고 우산을 세 개나 받쳐 눈비를 막는 고양이쉼터를 만들어주었다. 그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고양이들은 사람들 보살핌을 받으며 생애 최초의 겨울을 나고 있다. 
 
덤불 덮인 땅속에 서식처를 만든 고양이들이 허구한 날 어떻게 사는 지 알 도리는 없다. 다만, 기온이 떨어지면 서로 기대어 체온을 나누겠지. 비가 오면 빗물이 새어 들지 않는 곳을 용케 찾아내겠지. 먹을 게 없으면 사냥이라도 해서 배를 불리겠지. 그렇게 짐작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찮은 미물도 살기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그게 살아있는 것들의 본성이다. 고양이 정도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며 겨울 추위를 혹독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후위에 움츠러들던 내 마음도 어느덧 조금씩 녹아들었다.
 
베트남화가 부이콩칸(Bui Cong Khanh)은 '주거지'를 화두삼아 자신의 예술을 창작해내는 예술가다. 어느 날 자신이 사는 호치민시 고층아파트의 창을 통해 방대한 빈민촌이 펼쳐진 걸 보고 충격을 받아  그는 허름한 가건물을 미니어처로 제작하고 빗소리를 녹음해 도시빈민들이 사는 주거 형태와 분위기를 가감없이 재현해냈다. 궁핍했던 그의 어린 시절 기억도 작품을 만드는 데 한몫 했다. 그가 제작한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Dwellings'다. 빈민들이 사는 주거지라는 의미다. 

 

dwellings visual arts, Esplanade, Singapore ⓒ Bui Cong Khanh

 
푸른 색 톤의 조명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광경은 무허가촌에 사는 도시빈민들의 고단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살던 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아무데나 무허가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비바람을 피한다. 허가받지 못해 주소조차 없는 가건물과 주소를 갖춘 위풍당당한 고층의 아파트촌이 한데 존재하는 모습은 도시화되어가는 역사의 한 단면이다. 무허가 건물이기에 강제철거 명령이 집행되면 언제라도 떠나야 하지만 창문에서 새나오는 저 희미한 불빛속에는 사람의 온기가 깃들어 있는 듯 따스한 느낌도 든다.  
 
비바람을 피할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욕구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우후죽순처럼 쑥쑥 솟아오른 고층의 주거단지를 쳐다볼 때면 차라리 길고양이 처지가 부럽기도 하다. 고양이들은 그런 집을 사기 위해 뼈빠지게 일할 필요도 없고, 한 채라도 더 많은 집을 소유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으며, 그 집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남을 기망하는 술수를 쓰지 않아도 되기 떄문이다. 고양이들은 집을 사치품으로 장식하지도 않고 남과 차별화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투자한 만큼 시세가 오르지 않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다. 사는 동안 집 걱정, 의복 걱정하지 않고 그저 순간을 열심히 살 뿐이니 어찌 고양이 처지가 부럽지 않을까.
 
내복을 껴입고도 추워서 손을 비벼 열을 내고 입김을 호호 불며 추위를 견디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온 식구가 한 방에 오글오글 모여 앉아 고구마를 먹던 어느 겨울날, 창문으로 새어 나온 백열등 불빛이 바깥의 차가운 밤공기와 대비되어 방 안이 더 따스하게 느껴지던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고 말하면 위선이 될까? 기억은 선택적이라 좋았던 것만 기억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내 마음은 번드르한 현대식 건물보다 궁핍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허름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던 어린 시절의 그 집, 그 골목길이 그립기만 하다. 적어도 그 시절엔 인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 해가 내리쬐는 정오 무렵, 고양이 두 마리가 양지바른 풀밭에 앉아 일광욕을 하는 걸 보았다. 미동도 않고 앞만 바라보는 고양이 눈빛을 보니 내가 고양이에게 요리조리 관찰 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마른 풀밭 사이로 두 마리 고양이가 팔랑팔랑 뛰어다니며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이 겨울을 지내고 나면 제법 크고 씩씩한 고양이들이 되겠지. 우리 동네 고양이들 파이팅!

 

길냥이 반쪽이 색연필, ⓒ 홍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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