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수 및 1인 가구의 비율 변화 (출처: 통계청 인구통계 자료 이용 필자 가공)
김진석
중요하면서 값싼 일자리의 역설
인구 및 가족 구조의 변화에 따라 사회화 된 돌봄의 확대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1990년대 말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사회적 돌봄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일정하게 형성된 이후 역대 정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해 나름의 방안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양질의 공공 일자리 81만 개, 그 가운데 사회서비스 관련 일자리 34만 개에 대한 약속을 국민 앞에 내놓았다. 그 결과는 비관적이다. 정부가 내놓은 수치 상으로는 2020년 말 현재 계획 대비 99%에 이르는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용 형태와 임금 수준 등 일자리의 질 측면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약속이 무색한 수준이다. 단적으로 가장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 사업으로 거론되는 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의 경우 주 15시간 노동에 월 60만 원 미만의 급여를 지급하는 공공부조적 성격이 짙은 직접 일자리 사업이다.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이밖에도 어린이집 운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어린이집 연장보육 전담 교사의 경우도 월 급여 110만 원 남짓한 수준이다.
이처럼 돌봄 노동이 필수적이고 중요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제 돌봄 노동을 전담하는 일자리는 과소 평가되고 있다. 최근 연구들은 교육 수준이나 근속 기간, 고용 형태 등의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돌봄 일자리는 비슷한 조건의 다른 일자리에 비해 시간당 임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고용 형태의 측면에서도 불안정 고용과 불완전 고용의 문제가 심각함을 보여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의 기술, 경험, 자격 등의 속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돌봄 일자리의 저임금화를 '돌봄 임금 페널티'(care pay penalty)라고 정의했다. 돌봄 노동에 대한 과소 평가가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돌봄 노동은 왜 안 좋은 일자리가 되었나
돌봄 노동은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노동으로 인식됐다는 점, 대면 노동의 특성상 기계화와 자동화가 어려워 생산성 증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과소 평가의 이유로 제기된다.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돌봄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전담한 비공식 무상 노동이었다. 후기산업사회 이후 상품화와 제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유급 노동이자 하나의 직종으로 발달해왔다는 점은 돌봄 노동에 대한 과소평가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돌봄 임금 페널티가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돌봄 노동의 과소평가가 젠더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돌봄 노동의 평가 절하는 낮은 임금수준, 숙련과 자격 등을 반영하지 않는 불합리한 임금체계, 이에 더해 불안정 고용과 불완전 고용 등 열악한 고용상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발현된다. 이런 문제는 양질의 돌봄 노동 인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그리하여 돌봄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의 문제는 돌봄 노동자를 넘어 돌봄 서비스의 수요자 그리고 가족 등 돌봄 책임자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파급력을 미친다. 대인 서비스라는 돌봄 노동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돌봄 서비스의 질은 돌봄 노동자가 경험과 훈련을 통해 축적한 전문성과 돌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치관, 철학 등의 자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돌봄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노동 환경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돌봄 서비스 수요자들에게는 충족되지 않는 돌봄 서비스 수요, 돌봄의 낮은 질, 더 나아가 낮은 삶의 질의 문제로 연결된다. 이런 문제는 돌봄 책임자들의 삶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결국 우리 사회의 재생산과 존엄한 개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충족되지 않은 돌봄은 다른 누군가가 채워야만 한다. 사회적인 돌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빈 공간은 사적 돌봄이 메울 수밖에 없다.
지난 2년 동안 팬데믹의 경험으로 사회적 돌봄의 역할과 가치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방역 지침 준수를 위해 사회적 돌봄이 일시 정지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 공백을 메운 것은 결국 가족 내 무급 돌봄 노동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전통적 성별 분업과 여성에 의한 돌봄 전담은 발빠르게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돌봄 노동에 제값을
우리나라가 국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평가절하 되어 온 돌봄 노동에 제값을 치러야 한다. 돌봄 노동에 제값을 치르는 방법 가운데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해법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시민적 기본권으로서 모든 국민의 보편적 돌봄권이 선언되어야 한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에 돌봄권이 포함됨을 법과 제도를 통해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돌봄기본법이나 사회서비스기본법과 같은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돌봄의 사회적 가치를 공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돌봄권의 선언과 이를 제도화하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둘째, 돌봄권 보장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명확하게 한다. 사회적으로 노동력의 재생산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적인 돌봄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한 기능이자 책임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특히 돌봄 욕구가 생성되고 충족되는 공간으로서 지자체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