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선후보가 21일 조계사 불교역사기념관에서 열린 '2007 불교계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유성호
지지율이 올라가는 동안에 창조한국당 시·도당들이 창당되고 10월 30일에는 중앙당이 창당됐다. 그렇게 세를 늘려가는 문국현을 상대로 민주신당이 손길을 내밀었다. 그를 상대로 하는 단일화 제안이었다. 10월 15일에 민주신당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이 이명박에게 현저히 밀리고 있어 단일화 없이는 힘들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민주신당의 단일화 추진은 11월 5일의 '반(反)부패 미래사회 연석회의' 제안으로 본격화됐다. 이 제안은 사실상 문국현을 겨냥했지만 외형상으로는 범여권을 상대로 했다. 민주신당·창조한국당 등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힙을 합쳐 이명박에 맞서자는 제안이었다.
11월 7일의 이회창 출마 선언은 민주신당을 더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회창이 나섬에 따라 이명박의 표가 분산되는 효과도 있었지만, 이회창의 기세가 대단해 정동영이 3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민주신당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와 경쟁해야 할 처지가 됐던 것이다.
이회창의 등장은 한나라당의 표뿐만 아니라 범여권의 표도 잠식시켰다. 그래서 문국현에게도 불리했다. 11월 10일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은 10월 29일 조사 때보다 12.1%포인트 감소한 41.6%를 기록했다. 9월까지 10% 미만에 있다가 10월 16일 16.2% 및 10월 29일 17.1%로 상승세를 타던 정동영은 11월 10일에는 14.2%로 내려갔다. 문국현 역시 10월 29일 9.1%보다 낮은 7.8%를 기록했다.
민주신당의 단일화 제안은 갈수록 강해졌다. 이명박의 당선을 위험시하는 범여권과 시민사회단체들도 이에 가세했다. 하지만 문국현은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단일화 제안은 그의 출마 포기를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신자유주의에 맞서겠다는 세계사적 의의를 표방하며 출마 선언을 한 그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한다는 측면에서는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민주신당을 위해 그런 희생을 감내하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
자신을 향한 단일화 압박이 점점 거세지자 그는 분명한 입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12월 3일 그는 창조한국당 대변인을 통해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런 일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민주신당도 포기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다며 더욱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대선에 승리하면 공동정부를 구성할 것이며, 문국현이 지향하는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문국현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차기 총선을 통해 국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이런 약속을 시민사회 원로들을 통해 보증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12월 초부터는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 지도자들까지 중재에 나섰지만, 문국현은 끝내 거부했다. 12월 8일 그는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3일 뒤인 11일 밤에 함세웅 신부가 정동영·문국현을 서울 제기동성당으로 초청해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협상을 진행시켰지만, 그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문국현이 단일화를 거부한 가장 큰 이유는 정동영의 지지율에 있었다. 단일화해도 승산이 별로 없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또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정서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권과 거리가 먼 그를 지지해준 유권자들은 정치권 전반에 대한 개혁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기성 정당과 단일화를 하게 되면 선거 승리 여하를 떠나 향후 입지가 불안해질 수도 있었다.
자신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미래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신당이 문국현 지지 세력의 국회 입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기는 했지만, 거대 정당이 대선 뒤에 약속을 이행하리란 믿음도 갖기 힘들었다.
그에 더해 민주신당의 협상 태도도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12월 8일 자 <뷰스앤뉴스> '문국현, 후보 단일화 결렬 선언'에 따르면, 그는 자신은 '정동영 필패론'을 믿으면서도 단일화 제안에 부응하고자 정책 토론회를 제안했지만 민주신당이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굳이 정책 토론을 할 필요가 있느냐?', '상처만 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단일화는 '죽음의 키스'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상처가 날 것을 각오하지 않고 세만 불리려 하는 단일화는 공멸만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위 결렬 선언에서 그는 "상처가 나야 해원의 굿풀이가 되는 것이고 국민이 용서를 하는 것인데, 어떻게 용서 없이 세만 자꾸 불리려고 하니까 죽음의 키스처럼 모이기만 하면 숫자가 자꾸 늘지 않고 줄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들이 아마 실무자들과 대변인들 간에 오고간 것 같다"며 "나는 그분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못을 박았다.
문국현의 표현대로라면 정동영과의 단일화는 서로를 죽이는 죽음의 키스였다. 두 사람을 살리는 키스가 아니라 두 사람을 죽이는 키스였다. 신자유주의에 맞서겠다며 대선에 출마한 그는 그 죽음의 키스를 피해 대선운동을 완주했다. 12월 19일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은 48.67%,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은 26.14%, 무소속 이회창은 15.07%, 창조한국당 문국현은 5.82%, 민주노동당 권영길은 3.01%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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