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연설하고 있는 에바 페론.
wiki commons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멕시코 역시 1960년대 이후 대통령 부인들이 기존에 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확인은 어렵지만, 그녀들의 롤모델은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이었을 것이다. 성녀와 구원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껴안을 수 있는 국모 상이길 원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부인이 주도하여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적 프로젝트들이 진행되었다.
감투와 벽돌
이를 관장하기 위해 국가 기관들이 만들어졌다. 1961년 '국가 아동보호처(Instituto Nacional de Protección a la Infancia)'가 신설되었고 이후 여러 번 조직이 개편되면서 현재 '국가 통합 가족부(Sistema Nacional para el Desarrollo Integral de la Familia)'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통령처 직속기관으로 탄생한 이들 조직에서 의례적으로 영부인들이 수장을 맡는 전형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멕시코 내 아동, 가족, 빈곤, 소외 같은 문제들은 국모 격인 영부인에 의해 보호받고 위로 받는다는 이미지들이 수십 년 동안 재생되었다.
이 시스템은 연방정부뿐 아니라 각 주정부와 시, 군, 읍/면 단위 지방정부까지 적용되어 어디든 수장이 있는 곳이라면 '통합가족부'가 만들어졌다. 물론 통합가족부의 리더는 주지사를 포함해 각 시, 군, 읍/면 장의 부인이 맡았다. 지방정부 수장이 여성이거나, 혹 남성이지만 부인이 없는 경우 가족 중 여성 형제가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통합가족부에서 하는 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이나 생필품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공공예산을 집행하여 물자를 구입하고 분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이다. 그 중 가장 고질적인 것은 전문성 부족과 부정부패로 인한 예산의 오용과 유용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지방정부일수록 적절한 감시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정부패를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통합가족부야 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다름 아니다. 게다가 수장이 바뀔 때마다 전 직원이 통째로 바뀌면서 개인의 사조직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럼에도 멕시코에서 여전히 이런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은 연방정부든 지방정부든 각 정부 수장의 여성 배우자 혹은 형제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를 둘러싼 관련자들의 이해관계가 계속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지사든 시장이든 혹은 읍∙면장까지 그들의 부인 혹은 여자형제들 중 혈연을 이유로 상당한 정치적∙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는 흔치 않다. 한국에 '감투'가 있다면 멕시코엔 '벽돌'이 있다. 아주 작은 지위라도 오를 수만 있다면 밟고 올라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싶은 욕망이 표현된 말이다. 올라 선 그 곳이 겨우 벽돌 한 장 높이라 해도 말이다. 권력을 갈망하고 그 앞에 유난히 민감한 멕시코인들의 이런 성정을 일러 '벽돌주의'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오랜 시간 의전과 의례로 자리 잡은 이런 문화에 '과연 그래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던져졌고, 그 물음을 던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이전과 다른 역사가 쓰이고 있다. 사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멕시코 대통령이었던 비센테 폭스(Vicente Fox)의 부인 마르타 사하군(Martha Sahagun)도 통합가족부의 수장을 맡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 통합가족부와 같은 성격을 갖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그 곳에서 영부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했으니 지금의 경우와는 다르다 할 수 있다.
특혜도 오점도 없는... 롤모델
지난 대선에서 AMLO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베아트리스가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그 곳에서 발표된 내용은 그녀의 남편이 대통령이란 사실만으로 그녀가 '퍼스트레이디'라 불려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퍼스트가 있다면 세컨드(Second) 이하 차위가 있을 텐데 모든 여성은 다 같은 여성일 뿐이지 그 안에 굳이 퍼스트 혹은 세컨드로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덧붙이길 구체적 업무와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이 따르지 않는, 그간의 의례적이고 상징적 역할뿐이라면 이제는 멕시코 현실에 기대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이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2018년 12월 1일, 남편의 대통령 취임 이후 그녀는 여전히 그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근무 중이다. 그녀의 직업은 현직 대학교 교수이자 여러 편 소설을 출판한 작가이기도 하다. 남편이 대통령이 된 이후 새로 부가된 유일한 활동은 '역사 및 문화기억 국가위원회'의 외부 자문위원뿐이다. 물론 무보수다.
지난 2019년 그녀는 소속 대학교의 비정년 트랙에서 정년트랙으로 옮겨졌다. 이에 대해 여러 언론들이 혹시 대통령을 남편으로 둠으로써 얻은 특혜가 아닐까 파헤쳤지만, 해당 대학의 경우 근무 개시 이후 최초 5년은 비정년 트랙으로 임용되고 일정 수준의 연구와 업무 실적을 채우면 5년 이후 정년 트랙으로 자동 전환되는 시스템으로 계약이 운용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언론들이 제기한 물음이 실효를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