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령'이라고 쓰여진 바위를 어루만진 뒤 기념촬영 제의에 "우리 땅인데 무슨 기념촬영…"이라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2012.8.10
청와대 제공
12월 14일 자 <야후 재팬>에 재일한국인인 변진일 <코리아 리포트> 편집장이 쓴 '한국 여야당 대통령후보가 다케시마에 상륙할 가능성은!?(韓国与野党大統領候補が竹島に上陸する可能性は!?)'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변진일 편집장은 여야 후보 중에서 지지율이 추락하는 쪽이 '독도 상륙'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형세가 불리한 후보가 기사회생의 대책을 강구할지 모른다"라며 "어쩌면 다케시마 상륙이라는 비장의 수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윤석열은 그렇게 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변진일 편집장의 시각이다. 윤석열이 일본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호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 후보는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은 문 정권이 반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온 데 있다'며 문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고 변진일은 말한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그는 전망했다. 윤석열 역시 상황이 불리해지면 "친일 딱지를 떼기 위해" 독도 방문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독도를 방문해 일본인들의 비판을 한 몸에 받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 매체에 이런 기사들이 실리는 것은 자민당이 앞장서서 '한국 제재'를 운운하는 분위기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역사지리학자의 연이은 발표
이런 가운데, 이달 2일에는 '다케시마 연구'로 주목을 받아온 역사지리학자의 최근 연구 성과가 일본 언론에 소개됐다. 시마네대학 교수인 후나스기 리키노부(舩杉力修)가 그 주인공이다.
후나스기 리키노부 교수는 역사지리학 관점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을 입증하고자 한다. 1880년 독일에서 제작된 지도에 독도가 일본령으로 표기됐다는 사실을 발표해 2020년 1월 23일 자 <산케이신문>에 보도됐다. 독일을 비롯한 당시의 서구열강이 주로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 정보를 획득했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은 채 그런 주장을 발표한 것이다.
그는 정확히 1년 뒤인 작년 2월 23일에는 <아사히신문>을 통해 비슷한 주장을 내놓았다. 제목이 '다케시마를 일본 이름으로 표기, 해도를 발견(竹島を日本名表記、海図を発見)'인 <아사히신문> 기사에 따르면, 그는 연합국과 일본의 강화조약인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발효된 뒤인 1952년 10월에 미국 정부가 제작한 지도를 증거로 공개했다. 지도가 제작된 시점을 근거로, 그는 "미국이 (평화조약) 기초 시에 다케시마를 일본령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발언했다.
당시의 미국은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일본을 두둔하는 동시에, 한국의 실효적 지배도 용인하고 있었다. 설령 미국이 독도를 일본령으로 인식했다 해도, 독도가 미국 땅이 아닌 이상 미국의 인식 여하가 독도 영유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후나스기의 연구는 결정적 성과가 될 수 없다.
이달 들어서는 조선 후기에 해당하는 일본 에도 시대(도쿠가와막부 시대)에 독도가 일본인들의 생활권 안에 있었음을 입증하기 위한 후나스기의 연구 성과가 <산케이신문>에 실렸다. 제목이 '다케시마 연구에서 본 다카다야 가베에의 시마네 기항(竹島研究から見つかった高田屋嘉兵衛の島根寄港)'인 1월 2일 자 기사가 그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후나스기는 에도 시대의 유명한 상인인 다카다야 가베에(1769~1827)가 시마네현 동쪽인 효고현에서 오늘날의 홋카이도인 에조지로 선박을 타고 이동할 때 독도를 들른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내세웠다. 유력한 일본 상인의 생활권 안에 독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시대에 독도와 일본이 친밀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