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과 항일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등의 흉상에 신흥무관학교 107주년을 맞아 꽃목걸이가 걸려 있다. 2018.6.8
이희훈
지금도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서는 육사의 기원을 일제강점기 직후인 미군정기에 둔다. 1946년 5월 1일 미군정 하의 '국방경비대사관학교 개교'를 육사의 출발점으로 잡는다.
이는 육사의 문제점이기보다는 국군 일각의 문제점이다. 헌법 전문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했으므로, 국군의 정통성 역시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에서 찾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도 국군 일각에서는 3·1운동 정신을 정면으로 거역한 백선엽을 군의 사표로 삼고자 한다. 이로 인한 문제점이 육사 홈페이지의 설명에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완태 당시 교장이 육사 교정에서 신흥무관학교 학술대회를 열었기 때문에 작으나마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2018년 5월 20일 자 <주간조선> 인터넷판 기사는 '육사 총동창회 감사단, 육사에 출동한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완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최근 육사총동창회와 갈등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주간조선>은 '김완태 교장이 이명박·박근혜 기념비를 철거하고 백선엽 기념관을 철거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육사 동창회가 감사단을 파견했지만, 실제 확인해 보니 사실과 달랐더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면서도 <주간조선>은 김완태 교장에게 뭔가 문제점이 있는 듯한 뉘앙스로 보도했다. "현 정부에 코드를 맞추려는 듯한 그의 행보"라는 표현을 쓰면서 그런 이유로 "일부 육사 동문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직접 발표자로 나서
하지만, 그가 문재인 정부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군과 육사를 바로 세우려는 소신에서 그렇게 했다는 점이 9일 분명해졌다. 국가보훈처가 후원하고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상임대표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가 주최한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직접 발표자로 나서 '국군은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심포지엄의 제1발표자로 나선 그는 '신흥무관학교와 국군의 독립정신 계승'이라는 주제로 대한제국 군대, 의병부대, 독립군 부대들과 한국광복군, 대한민국 국군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한국군의 정통성 계보를 설명하면서, 국군이 '독립군 부대들과 한국광복군'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국외에서 독립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한 핵심 주체는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그런 위대한 역사를 써나갔다는 사실"이라고 답했다.
1919년에 이회영·이상룡 등에 의해 설립된 신흥무관학교는 약 3500명의 독립군 전사들을 길러냈다. 그런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각종 독립군 양성소에서 배출된 전사들이 곳곳으로 퍼져나가 대일 독립전쟁을 수행했고 그것이 미국의 원폭 투하와 더불어 한국 해방을 이끌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군대가 신흥무관학교를 정신적 기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김완태 전 교장의 발표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김완태는 굵직굵직한 독립전쟁 성과의 배후에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좌진은 신흥무관학교 교관 이범석과 졸업생 오상세 등 다수의 인원을 교관으로 초빙하여 교재 지원과 함께 십리평 지역에 사관연성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홍범도가 직접 지휘하는 대한의용군에도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편성되어 청산리 대첩에 참전하였다"고도 말했다. 김좌진·홍범도 부대의 주축이 신흥 출신들이었음을 지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