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태일이가 이 시대의 태일이에게

검토 완료

강보경(tidls012)등록 2021.12.02 16:35
 

영화 태일이 포스터 ⓒ 명필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70년 11월 13일 대한민국의 한 청년이 몸에 불을 붙인 채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청년은 바로 전태일 열사다.
 
지난 1일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영화 '태일이'가 개봉했다.
퇴근을 하고 바로 태일이를 보러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평일이기도 하고 시간이 늦어서 영화관에 사람이 많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태일이를 본 사람은 그 시간에 나 혼자였다. 한 관에 혼자 있으니 영화관을 전세 낸 기분 같아 순간 좋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학창시절 전태일 열사께서 근로기준법을 들고 분신 항거를 하셨다는 것은 많이 들었지만 왜 그랬는지, 어떤 이유로 분신까지 하게 된 것인지는 자세하게 배우지 못했다.
 
영화 태일이는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태일이는 1966~1970년 평화시장 안에 있는 한미사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다 재단사까지 올라가게 됐다. 태일이는 재단사가 되면 자신 보다 어린 시다(보조원)들의 일을 도와주고 보탬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하루 16시간 근무는 기본이며 공장주들은 어린 시다들에게까지 각성제를 먹여가며 일을 시켰다. 평화시장노동자들은 햇빛 한줌 조차 들어오지 않는 작업장, 약 135~40cm인 낮은 형광등, 소음, 먼지 자욱한 헝겊 더미 속에서 일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했다. 평소에는 일요일에도 격주로 쉬지만 의류업의 대목이 끼면 열흘씩, 20일씩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평화시장에서 5-6년씩 일한 스물 서넛의 미싱사들은 얼굴에 핏기가 없고 안질, 신경통, 기관지염, 폐병, 소화불량, 신경성 위장병, 월경불순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이는 당시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태일이 중에서 삼동회 회원들의 모습 ⓒ 명필름

 
어느 날, 태일이는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된다.
 
태일이가 본 근로기준법에는 제42조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1일에 8시간 1주일에 4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단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1주일에 60시간을 한도로 근로할 수 있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사회부의 인가를 얻어 전항의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단 사태가 급박하여 인가를 얻을 여가가 없을 경우에는 사후 지체없이 승인을 받어야 한다.
 
사회부는 전항의 규정에 의한 근로시간의 연장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그후 연장시간에 상당한 휴게 또는 휴일을 줄 것을 명할 수 있다라고 기록이 돼 있었다.
 
평화시장의 공장들 중에 단 한가지라도 지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태일이는 평화시장, 동화시장, 통일상가의 재단사들과 '바보회'를 만들었다. 바보회는 근로기준법이 있으면서도 바보처럼 몰랐다는 뜻에서 만들어졌다.
 
바보회의 회원들은 화시장에서 근로하는 노동자들의 근로실태 조사를 위한 설문지를 배부했다. 설문지를 바탕으로 열악한 근로조건을 태일이가 대표로 보고 했지만 시청과 노동청 측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태일이는 포기하지 않고 1970년 9월 16일 바보회의 이름을 삼동 친목회로 바꾸어 활동했다.

삼동 친목회는 평화시장 주변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조항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받는 불합리한 대우를 고발하기 위해 서울시청, 노동청, 방송국, 신문사를 찾아다녔다.

삼동회는 1969년에 돌린 설문조사의 회수율이 저조해 노동실태를 다시 조사했는데 이때 126명의 응답이 회수됐고 이를 바탕으로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 개선 진정서를 만들었다. 이에 90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서명 했으며 이를 토대로 경향신문 등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실태를 보도했다.

노동청 관리들은 노동조건 개선을 약속했지만 관리들은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삼동회 회원들은노동운동을 모의 했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앞에서 노동자들의 집회 중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가 경찰과 고용주 측에서 동원한 패거리들에 의해 찢겨지고 짓밟혔다.
 

영화 태일이 중에서 삼동회 회원들이 시위 준비를 하는 모습 ⓒ 명필름


태일이는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근로기준법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외쳤다.
 
태일이는 국립의료원에서 치료를 받다 명동성모병원으로 이송됐다. 전신 3도 화상을 입어 바늘을 꽂을 곳 조차도 없었다. 태일이는 어머니께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영화가 끝나고 아주 긴 여운이 남았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긴 처음이었다.
태일이의 유언도 마음을 울렸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심금을 울렸던 말은 "어머니 배가 고파요"였다. 태일이의 꿈이었던 공장주가 되기 위해서는 사장의 눈 밖에 나면 안되지만 태일이는 자신보다 어린 시다들을 먼저 생각하고 굶으면서까지 남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1970년에 비하면 현재는 근로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지금도 수많은 태일이들이 존재한다.
2016년 '구의역 김군 사건', 2018년 '故 김용균씨 사건' '평택항 故이선호 사건' 등 우리 사회에서 보호 받지 못하는 태일이들이 너무 많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수많은 태일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영화 태일이는 지금 시대의 태일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 것일까.
 
영화 태일이는 지금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을 느껴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 같다.
 

영화 태일이 메인 예고편 ⓒ 명필름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