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하구 낙동강하굿둑.
권우성
낙동강 하굿둑을 지나 을숙도 생태공원 앞에 도착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시점'이라고 적힌 팻말 앞에 '낙동강 자전거길'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안내판이다. 그 앞에는 큰 탑이 서 있다. '복지의 새 기지 낙동강 하굿둑'이라고 적힌 기념탑엔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익숙한 곳이었다. 4대강사업을 취재하면서 열 번 넘게 다녀간 곳이다.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산 강과 죽은 강을 기록했고, 어부의 배에 올라타 수차례 탐사를 했던 곳이기도 했다. 4대강으로의 귀환, 잠시 잊고 지냈던 4대강 살리는 일을 다시 시작하라는 뜻일까?
[두 바퀴, 동해안 여행을 마치며] 숨표와 쉼표... 다시 길이다
사실 길의 시작과 끝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그 어디서건 시작할 수 있다. 길이 아니라 마음을 접는 곳이 끝이다. 한 발짝만 떼면 도착할 수 있는 두 개의 지점, 이것을 잇는 길은 오만가지가 넘는다. 바로 갈 수 있고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갈 수도 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길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다. 아니, 공간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다.
17박 18일 동안 3차례에 걸쳐 동해안 800여km를 자전거로 달렸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라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부산 을숙도까지 하루, 또는 3박 4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간 길로, 내비게이션이 지시한 대로만 가지 않았다. 때로는 마음 내키는 대로 빈둥거리며 '해찰'하듯 달렸다.
'업힐 지옥', '폭우 라이딩', 펑크, 막다른 길... 예상치 못한 상황도 속출했다. 처음엔 오르막길이 두려웠다. 동해안 자전거 여행을 계획할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도 했다. 이게 익숙해지자 나중에는 내리막길이 더 두려웠다. 페달을 한 번도 밟지 않고 1~2km를 무임승차하듯 이동하면 언젠가는 오르막이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새옹지마 같은 삶이 그렇듯.
나는 혼자였지만 홀로 페달을 밟지 않았다. 새벽 항구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어시장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어부와 잠수부들에게 다가가 말도 걸었다. 민박집, 식당 주인에게 시답지 않은 농담도 건네면서 동네 풍경, 음식 맛의 비결도 물었다. 그 말이 역사이고 문화였다.
숨표와 쉼표가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누각, 이름 없는 정자, 솔밭에 덩그러이 놓여 있는 바윗돌 위에 앉아서 바람을 쐬며 쉬어갔다. 기암괴석 해변길, 어떤 솔밭길은 2~3번 되돌아가 페달을 밟기도 했다. 해안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도 오래된 군상들이 남긴 명문장과 절창이 화석처럼 새겨진 역사문화 공간을 찾았다. 시간여행을 하며 쉬고 싶었다.
동해안 자전거 길을 달리면서 내 옆을 추월해가는 수많은 라이더들을 만났다. 그들의 속도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여행은 달리기가 아니었다. 내 마음 풍경을 살피는 시간이자 다른 사람을 응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자전거를 세워둔 채 가파른 어촌 마을을 거슬러 오르면서 과거에 그 길을 올랐던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내 삶도 반추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부산터미널에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차창 밖으로 자전거 속도보다 더 빠르게 산이 지나갔다. 흑백필름처럼 구름에 떠 있듯 산이 흘러가는 모습은 신령스럽기까지 했다. 서울에 올라가면 다시 안개 속 같은 일상을 시작할 것이다. 강원도 고성에서 달려왔던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두 바퀴가 쓰러지지 않게 페달을 밟고 있겠지.
다시 길이다. 여행이 시작됐다.
▲ '한국의 마추픽추'... 파스텔 톤 감성마을 탄생 비화 해안선 1만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첫 행선지는 동해안 고성부터 부산까지. 이 영상은 동해안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만든 13편, 마지막 영상이다. 해운대달맞이공원부터 부산 을숙도까지 두 바퀴 인문학 여정을 담았다. 관련기사를 보시려면 “자갈치시장 횟집서 '자갈치' 찾지 마라... 왜냐면?”(http://omn.kr/1w9z9“, '한국의 마추픽추'... 파스텔 톤 감성마을 탄생 비화”(http://omn.kr/1w9ze) 기사를 클릭하시면 된다.
ⓒ 김병기
[내가 간 길]
해운대달맞이공원-해운대해수욕장-동백섬-25의용단-자갈치시장-흰여울길-태종대-송도해수욕장-감천문화마을-다대포항-을숙도 생태공원
[인문·경관 길]
동백섬 :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 서쪽 끝에 있는 육계도. 겨울부터 봄까지 동백꽃이 많이 핀다. 해운대 이름의 유래가 된 '해운' 최치원의 시비가 서 있다.
25의용단 : 부산 수영사적공원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왜군에 항전한 25인의 의병을 모신 제단이다.
흰여울길 : 바산 영도다리를 건너 태종대에 오르는 고갯길에 나오는 마을이다. 절벽에 붙박히듯 살아갔던 6.25 피난민들의 삶을 추억할 수 있다.
태종대 : 부산 영도구에 있는 명승지이다.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을 보며 바다를 관망할 수 있다. 맑은 날에는 대마도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감천문화마을 : 부산 사하구 감천2동 일대에 태극도 신도들이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2009년 문화관광부의 '마을예술 프로젝트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낙후됐던 주거지가 문화마을로 바뀌었다.
[사진 한 장]
파스텔 톤의 감천문화마을 전경
[추천, 두 바퀴 길]
영도대교에서 흰여울길을 거쳐 태종대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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