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04 18:27최종 업데이트 21.12.0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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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해수욕장과 초고층 주상복합 엘시티.권우성
 
까마득했다.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의 와우산 꼬리 갯가를 의미하는 '미포'(尾浦) 표지석에서 올려다 본 엘시티 건물. 해운대 동북측 끝에서 하늘을 찌를 듯이 버티고 선 101층 건물은 대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발로 읽혔다. 그곳에서 웨스턴조선호텔까지 1.6km 해변을 병풍처럼 둘러친 빌딩들.

해운대는 이들의 해상정원으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대리석과 시멘트 블록으로 정비된 모래사장 앞 인도를 지나며 문득 든 생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모래 해변은 한산했다. 그 넓은 모래사장 위를 걷는 사람은 어림잡아 스무 명 안팎이었다. 모래사장 중간에 영문 글씨로 'HAEUNDAE'(해운대)라고 적힌 포토존에서 자전거를 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돌아서서 인도 쪽으로 걸어 나오니 시비 한 개가 서 있다.
 
대해운대 해수욕장에서 기념촬영김병기
 
"구름 속에 치솟은 듯/아스라이 대는 높고/굽어보는 동녘바다/티없이 맑고 맑다/바다와 하늘빛은/가없이 푸르른데/훨훨 나는 갈매기/등 너머 타는 노을"(조선 중기 문신 이인눌의 '해운대에 올라')

400여 년 전처럼 '등 너머 타는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해운대는 아니었다. 등 너머는 빌딩 숲이다.

[동백섬] 해운정... 최치원의 재발견

경포대해수욕장에 경포대가 없듯이 해운대해수욕장에도 해운대는 없다. 남쪽 끝 동백섬을 둘러봐야 '해운'(海雲)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을 알 수 있다. 자작나무처럼 하얀 살결의 동백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뤘다. 동백꽃 피는 1월~4월에 왔다면? 산책로에 통째로 툭하고 떨어진 동백꽃과 나무에 핀 꽃들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박정희 정권 때 금지곡이었던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노래가 절로 나왔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1절 중)
 
부산 동백섬 최치원 동상과 해운정.권우성
 
부산 동백섬 해운정.권우성
 
공원 입구에서 완만한 경사길을 300m정도 올라가니 커다란 소나무에 둘러싸인 2층 누각 '해운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 신라시대 최대 학자로 꼽히는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시비가 서있다. 최치원이 이 일대 경치에 반해 자신의 호 '해운(海雲)'이라는 글자를 동백섬 남쪽 절벽에 새겼다는 데에서 해운대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당(唐)나라로 유학 가서 18세 때 빈공과(賓貢科)에 장원급제했다는 최치원이 25세 때 썼다는 '격황소서(檄黃巢書)'. 우리가 배운 최치원은 '황소의 난' 우두머리가 그 글을 읽다가 놀라서 침상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말이 전해지는 그 분이었다. 그런데 동백공원 시비에는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최치원의 또 다른 면모도 담겨 있었다.

적막한 묵정밭 옆(寂寞荒田側)
번잡한 꽃 여린 가지 누르네(繁花壓柔枝)
향기는 초여름 비 개니 가버리고(香經梅雨歇​)
그림자만 보리 익는 바람에 기울었네(影帶麥風欹)
수레와 말 탄 누가 보고 감상하리(車馬誰見賞)
벌과 나비만 와서 서로 볼 뿐(蜂蝶徒相窺)
난 곳이 천함을 부끄러워하며(自慙生地賤)
사람에게 버림받은 한을 견디네(堪恨人棄遺​)
-접시꽃(蜀葵花. 최치원)


[자갈치시장] 수족관에서 '자갈치' 찾지 마라
 
부산 25의용단.권우성
부산 25의용단.권우성
 
수영역 근처 '25의용단'으로 페달을 돌렸다. 임진왜란 때 울산 병영성을 버리고 내 뺀 경상좌병사 이각(李珏)과 함께했던 인물이 이곳에도 있었다. 수영성을 버리고 도주한 경상좌수사 박홍(朴泓). 울산 병영성을 지키려고 의병들이 나섰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왜군에 맞선 의병들이 있었다.

"싸우면 이겨서 살 것이요, 싸우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나라의 존망이 경각에 있거늘 어찌 삶을 구하여 산야로 달아날 것인가. 단 한 번의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리라."

25명의 의병들은 이렇게 맹세한 뒤 7년 동안 유격전을 펼치다 전사했단다. 이곳에는 이들을 추모하는 25개의 비석이 서 있다. 잠시 쉴 겸 우측 길로 올라가면 나오는 사적공원의 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식혔다.

자갈치시장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업힐' 때문이 아니었다. 수많은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인도의 자전거도로 표식은 무용지물이었다. 좁은 인도 쪽에 가로수가 떡 하니 버티고 선 곳도 있다. 복잡한 도심 구간을 통과해 부산 남항쪽의 유라리 광장길을 따라 자갈치시장에 도착했다.
 
부산 자갈치시장.권우성
부산 자갈치시장.권우성
부산 자갈치시장.권우성
 
부산을 대표하는 전통시장. 커다란 건물의 어시장이 줄지어 있고 도로 맞은편에도 횟집들이 즐비했다. 자전거를 끌고 어시장으로 들어갔더니 수많은 '자갈치 아지매'들이 좌판 위에 싱싱한 생선을 올려놓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활어를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선 건물도 있었다. 한 바퀴 둘러본 뒤 바깥으로 나왔다.

'산꼼장어' '참바다 원조 숯불꼼장어' '부산 꼼장어' '할매 꼼장어' '연탄불 꼼장어'

식당들이 경쟁하듯 내건 간판은 꼼장어로 도배됐다. 왠지 자갈치 꼼장어는 다를 것 같았다. 1인분은 안 판다며 손사래 치는 식당 주인을 설득했다. 도마 위에 산 꼼장어를 올려놓고 송곳으로 머리 부분을 찍어 고정시킨 뒤 꿈틀거리는 산 것의 배를 가르던 그에게 물었다.

"저기, 수족관에 자갈치도 있나요?"

그는 웃으면서 "매립하기 전에 자갈이 자글자글한 자갈밭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 말했다. 자갈에 물고기 '치'! 예전에도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머쓱했다.

1930년대에 이곳에 중앙도매시장이 열렸을 때 수산물 집산과 유통을 일제가 통제했다. 해안에는 작은 고기잡이배로 잡은 해산물을 파는 노점들이 있었는데, 이게 자갈치시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꼼장어가 불판 위에서 익었다. 꿈틀댔다.

[흰여울길&태종대] 절벽 끝에 매달린 삶... 대마도는 안 보였다
 
부산 영도 태종대 가는 고갯길에 있는 흰여울길김병기
 
태종대로 가려고 영도다리를 건넜다. 두 갈래 길이 나왔다. 내비게이션은 우측 도로로 안내했다. 가파른 첫 고갯길, 자전거를 끌고 고개 마루쯤에 있는 흰여울길로 들어가니 묵호항 논골담길에서 보았던 풍경이 펼쳐졌다. 오래된 집 담벼락과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담 사이의 거리는 두 걸음도 채 안 될 듯했다. 담 밑은 깎아지른 절벽.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의 아픔과 시간의 흔적, 가파른 절벽 끝에 매달렸던 삶 속으로 문화마을 영화기록관, 두레박 쉼터, 점집, 작은 갤러리, 카페, 공방 등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섰다. 젊은이들이 가게에 머물거나 벼랑길을 누비고 다녔다.

바다 쪽을 바라보니 배들의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20~30여척의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었다. 부산으로 들어오는 화물선이나 원양어선들이 급유를 위해 머무는 '묘박지'였다. 뱃고동 소리가 힘차게 들렸다. 담벼락 밑 나무데크에 엎드려 졸고 있는 고양이는 기척도 안했다.

다시 험난한 '업힐'이 시작됐다. 중리산(150m)을 넘어 태종산(252.4m) 기슭의 태종대에 오르는 7.2km 구간의 절반은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 고개를 넘은 듯했다.

"자전거 못 들어갑니다. 끌고 갈 수도 없어요. 들고는 올라갈 수는 있습니다."
 
부산 태종대 입구.권우성
 
태종대라고 적힌 큰 표지석을 지나 고개를 오르려는 데 주차요원이 웃으면서 막았다. 가로수 기둥에 자전거를 묶고 걷기 시작했다. 부산 영도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재이자 국가지질공원인 태종대. 신라 태종 무열왕이 이곳에 와서 활을 쏘아서 태종대로 불렸다는 게 '동래부지'에 기록돼 있다.

곰솔이 우거진 오르막을 오르니 탁 트인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맑은 날에는 대마도도 보인다고 하는 데, 날이 흐렸다. 대신 먼 바다에서부터, 벼랑을 차고 오르는 바람, 바람소리... 한참을 걸으니 기암괴석, 몽돌해변도 나타났다. 걷는 데 족히 1시간이 걸리는 국가명승지의 4km 남짓한 전망로가 아스팔트로 잘 포장돼 있다는 게 아쉬웠다.

'한국의 마추픽추'... 파스텔 톤 감성마을 탄생 비화 해안선 1만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첫 행선지는 동해안 고성부터 부산까지. 이 영상은 동해안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만든 13편, 마지막 영상이다. 해운대달맞이공원부터 부산 을숙도까지 두 바퀴 인문학 여정을 담았다. 관련기사를 보시려면 “자갈치시장 횟집서 '자갈치' 찾지 마라... 왜냐면?”(http://omn.kr/1w9z9“, '한국의 마추픽추'... 파스텔 톤 감성마을 탄생 비화”(http://omn.kr/1w9ze) 기사를 클릭하시면 된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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