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중인 영애씨
부희령
영애씨는 조선족학교인 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 철강회사와 중국에 진출한 한국 신발회사에서 일하다가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친척 방문으로 먼저 한국에 나와 있던 고모가 중매를 서서 결혼하게 되었어요. IMF가 터진 직후였죠. 저는 한국에 들어올 때나 한국에 살면서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어요. 정말 치열하게 사신 분들이 많아요."
영애씨 말대로 결혼은 중국동포 여성이 가장 쉽고 간단하게 한국으로 이주하는 방법이었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문화와 언어가 달라서 적응이 힘들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외래어를 많이 쓰잖아요. 못 알아듣는 말들이 많았어요. 대부분 중매 결혼을 하니까 한국에 와 보니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대요.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밭에 나가서 일했다거나 시어머니가 화장실 앞까지 따라와 감시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우리 때는 천 명이 결혼해서 들어왔으면 백 명 정도는 기막힌 사연을 안고 중국으로 돌아갔어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중국동포가 한국에 들어오려면 복잡한 서류 절차와 값비싼 비용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산업연수생 비자나 친척 방문 등으로 한국에 들어오려면 중개인에게 알선료 명목으로 3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거의 다 빚이었다.
산업연수생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받는 월급으로는 쉽게 갚을 수 없는 돈이었으므로 대부분은 회사에서 이탈하여 식당 등으로 일하러 갔다. 그러나 식당은 숙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주거비를 아낄 수는 있으나 오랜 시간 강도 높은 노동이 필요한 자리라서 고연령 여성이 오래 일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여성들이 돌봄 노동의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2004년에 개인 자원봉사 자격증을 따서 장애인 돌봄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어떻게 해서든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려고 시작한 거였어요. 그때 알게 된 한국 언니들이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있다고 알려줬어요. 나중에 쓸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격증부터 땄지요."
2005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으나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였다. 요양보호사들이 일하는 곳은 재가방문요양센터, 주야간노인보호센터 그리고 요양원이다.
영애씨는 처음에는 재가방문요양센터에서 일했다. 공공기관이 아니라 개인이나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민간기관에서는 운영자의 재량에 따라 시급, 추가수당, 4대보험과 같은 노동조건이 정해진다. 따라서 추가수당을 요구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아무리 고충을 호소해도 참으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노인들 가운데 의심병이 있는 분들이 있어서 자꾸 물건이 없어졌다면서 추궁을 해요. 또 같은 아파트 단지의 누구네 요양보호사는 손톱 발톱까지 다 깎아주더라 하면서 비교도 하죠. 노인을 돌보러 왔는데 가족들이 아줌마, 아줌마 부르면서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하는 것도 괴롭고요.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말동무만 해드리면 되는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씻겨드리는 일처럼 육체적으로 힘든 일도 해요. 똑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해야 해서 스트레스도 심하고요."
민간기관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져 을의 처지인 요양보호사들은 더 많은 수익을 확보하려는 센터장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추가수당을 입금했다가 다시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주야간보호센터도 마찬가지다. 영애씨가 민간기관에서 나와 프리랜서 간병인으로 알음알음 일을 하게 된 이유다.
한국인 10만원, 중국동포 9만원
프리랜서 간병인은 추가 수당이나 산재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영애씨는 보통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환자의 식사를 챙겨 주고, 몸을 씻기고, 운동을 시킨다. 그리고 용변 보는 것을 도우며 저녁 여덟 시까지 일한다. 간이침대에서 자면서 밤중에도 수시로 환자를 보살핀다. 이 때문에 손목과 허리의 통증을 달고 산다. 간병인의 직업병 같은 것이다.
열두 시간 이상 일하지만 시급은 열 시간으로 계산한다.
"한국인 요양보호사와 똑같이 일하면서도 돈을 더 적게 받지요. 한국인이 10만 원을 받으면 중국동포는 8만~9만 원을 받는 거죠. 내야 할 세금은 똑같이 내고 있고요. 돈을 적게 주면서도 네가 살던 나라에서는 그것도 큰돈 아니냐고 말하죠."
영애씨의 시급과 월수입을 물었다. 시급 1만 원, 월수입 평균 80~100만 원. 지금은 다른 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지만, 막상 영애씨 자신의 노후가 가장 큰 걱정이다. 그래도 영애씨는 요양원이나 요양보호사 자격증 없이도 일할 수 있는 요양병원에서는 일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곳은 노동강도가 엄청나게 높은 곳이다.
대소변 처리도 식사도 혼자 할 수 없는 환자 7~8명을 한 사람의 간병인이 24시간 돌보는 시스템이다. 규정대로라면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어야 하지만, 숙식을 해결할 곳이 마땅치 않은 중국동포 간병인들은 휴무 없이 일하고 따로 잠자는 곳도 없이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