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에 관하여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를 보고 애증의 부녀관계를 떠올리다

검토 완료

남예린(ylong0914)등록 2021.11.14 16:35
나의 아버지에 관하여
-중증 우울증을 앓는 부녀의 이야기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아버지. 이 단어를 쓰자마자 형용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몰아친다. 아버지와 무수히 많은 다툼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바닥을 보았고, 어느 순간 나는 딸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내가 부모를 사랑하는 만큼,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럼에도 아버지에 대한 기대와 애처로움을 놓을 수 없을 때. 나는 이것이 내 팔자려니 힘이 탁 풀리면서도 나는 있는 힘껏 내 뿌리를 미워하게 된다.

오늘 오은영 박사님이 진행하시는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를 유튜브 클립으로 보게 되었다. 가수 유재환님의 에피소드를 담은 영상을 보고 홀린 듯이 모든 편을 다 보았다. 사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항상 올라오던 영상들이었지만 일부러 누르지 않았다. 썸네일에 떠 있는 가족, 아버지, 폭력 이런 단어들이 내 기억을 헤집어 놓을까 두려웠고 실제로 영상을 정주행한 지금 이렇게 두서없는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내 아버지는 불쌍한 사람이다. 내 마음속에서는 예전에도 그러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가 나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고,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했어도 나는 나와 비슷한 뾰족한 모양을 가진 그가 안타깝다.
오랜 세월 주워들은 이야기로 미루어 짐작컨데, 아버지의 문제는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같은 상성을 갖는다는 것은 서로에게 엄청난 축복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러지 못하였고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많은 상처를 준 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소천하셨다.

아버지가 할아버지 제사 때 후회하는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미래에 나 역시 아버지 영정 앞에서 그 모습을 재연하게 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 자신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식에게 본인 부모의 실책을 반복하는 당신을 보며 나도 아버지를 닮아갈까 항상 검열했다. 결국 나도 아버지의 길을 답습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면서 이제는 마냥 아이같은 자식의 모습보다 강제로 한 명의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할 때가 되면서, 나는 더더욱 그를 용서할 수가 없다. 머리가 크고 감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자기 자식을 학대한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와 전쟁을 치룬 날이면, 아니 꼭 그렇지 않은 날들이어도 언젠가부터 나는 그가 홧김에 문을 박차고 나갈 때, 어디선가 변사체로 발견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나만큼이나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당신을 보며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를 항상 복기한다. 둘 중 누가 세상을 먼저 져버릴지 내기를 하는 것만 같은 미친 듯한 치킨게임. 숨이 막힌다. 왜 자식인 내가 져야 하는데.

요즘 꿈을 꾸면 어릴 때 아버지가 목마를 태워 주던 때가 많이 등장한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인 내가 진정 재미있게 꺄르르 웃었던 몇 안되던 유년시기.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놓칠 새라 꼭 붙잡으며 거실을 몇 바퀴씩 돌았었다. 어느새 훌쩍 커서 나를 목에 태우지 못할 때도 나는 목마를 태워달라 그렇게 요구했었다. 제주 공항에서 제주 시내로 가는 버스에서는 아빠 가슴에 침을 질질 흘리며 푹 잠든 기억도 생생하다. 잠에서 깼는데 내 기가 막힌 꼴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않았는데 너털웃음을 지으며 품에 꼭 안아주던 당신이 그땐 참 좋았다.

이제는 너무 먼 길을 와버려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지만, 여전히 그의 평안을 기도한다. 죽고 싶다고 평생 말하시던 아버지. 나도 그를 따라 죽음을 가깝게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의 마음이 하루라도 쉴 수 있길, 자식된 도리를 떠나 이승에서 만난 한 인연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그가 세상을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였으면.

우울증과 자살사고로 입원을 권유받기를 여러 차례. 이번 겨울에는 입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병을 나으러 가는 것이니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약도 잘 챙겨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병원도 꾸준히 가는 누구보다 모범적인 우울증 환자인 나이니, 병동에서도 잘 지낼 것이다. 그보다 아직 50대면서 본인 인생의 종말을 고하려는 당신이 걱정이다.
자식으로서의 아버지, 배우자로서의 아버지, 직업인으로서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당신. 그 수식어들의 무게를 벗고 한 사람으로서 삶의 의지를 이어가기를.

인생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들고 있는 것 같아 앞이 보이지 않겠지만 부디 실패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너무 많이 실패했기에 마지막에는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자격미달인 큰 딸의 작은 소망이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