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초 만에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이 남이 되는 과정은 허무할 만큼 냉정하다.
판씨네마(주)
당신을 평생 알아야 한다니 끔찍해!
우리의 이혼은 다른 부부와 분명 다를 거라 생각했던 니콜과 찰리는 저주의 막말을 퍼부으며 싸운 후 오열한다. 대화는 겉돌고 억울함만 남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밑바닥을 드러내 싸우면서 두 사람은 분명히 알게 됐을 것이다. 이미 둘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만큼 멀리 와 버렸다는 걸. 그럼에도 두 사람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서로를 안아준다.
결혼 생활 9년 차,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결혼은 결코 사랑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거다. 나와 남편은 서로 억울해지지 않도록, 누구 한 사람이 자신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끊임없이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쿨하지 못하고 지질해도 때로는 원하는 것을 정확히 구체적으로 말하고 때로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때로는 심하게 생색도 내고 과장된 칭찬을 하기도 한다. 피곤하고 귀찮고 가족끼리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다른 모든 관계처럼 부부 관계에도 끊임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런 노력 역시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말이다.
결혼이라는 관계가 녹슬거나 고장 나지 않게 계속 지켜보고 돌봐야 하는 이유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언제든 쉽게 깨질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초 만에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이 남이 되는 과정은 허무할 만큼 냉정하다. 최선을 다해 싸우고 최선을 다해 이해해야만 비로소 지속가능한 관계. 결혼을 유지하는 데는 처음 결혼을 결심할 때와는 조금은 다른 종류의 사랑이 필요하다.
질문을 바꿔본다. 이혼하면 사랑은 끝날까. 니콜은 말한다. 이제 말이 안 되긴 하지만, 평생 찰리를 사랑할 거라고.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소리쳤다가도 상대방의 풀려 있는 신발 끈을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사이.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왜 노아 바움백 감독이 이 영화의 제목을 <결혼 이야기>라고 지었는지 알 것 같다. 완벽해 보이는 부부의 이혼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꾸만 결혼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곱씹게 된다.
이혼 조정이 마무리 된 후, 아담 드라이버는 극단 단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이 장면에서 나는 꼼짝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결혼, 대체 뭘까.
날 너무 꼭 안는 사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내 자리를 뺏고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가도록 날 도와주지. 내가 살아가게 하지. 날 헷갈리게 해. 찬사로 날 가지고 놀고 날 이용하지. 내 삶을 변화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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