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추미애(왼쪽),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중에는 이낙연 후보와 추미애 후보가 토지공개념을 명확히 하는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추미애 후보는 토지공개념 개헌 공약과 함께 그 정신을 구현할 세부 정책도 꼼꼼히 제시해서 신뢰가 가지만, 이낙연 후보는 택지 소유를 제한하겠다는 둥, 유휴 토지에 종부세 가산세를 부과하겠다는 둥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제시해 '포장지만 토지공개념'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여권 지지율 1위인 이재명 후보는 국토보유세 도입, 비필수 부동산에 대한 부담과 규제 강화 등 토지공개념 정신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공약하기는 했지만, 토지공개념 구체화를 위한 개헌까지 약속하지는 않아서 올바른 정책 철학을 세우려는 의지가 추미애 후보보다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공급확대론의 주술에서 벗어나야
둘째, 다음 대통령은 공급확대론의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급확대론이란 부동산값 폭등이 공급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서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것만이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 인식 체계를 가리킨다. 참여정부 때 보유세 및 양도세 강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이론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가운데 유동성 과잉 상태가 지속해서 일어난 일을 두고 공급이 부족해서 일어났다고 강변한다는 점에서 곡론(曲論)의 전형이라 부를만하다. 공급확대론자들은 투기로 인한 수요의 팽창이 진정한 원인인데도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공급만을 외친다.
정책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그 정책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따져보면 된다. 지금 주택공급 확대 정책으로 이익을 볼 사람들은 누구인가. 토건족과 그 주변 인물들 아닌가. 토건족의 이해에 복무하는 이런 엉터리 이론이 언론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한국 부동산 정책 담론의 중심을 차지했으니 실로 통탄할 일이다.
투기 장세에서 공급확대 정책을 펼치면 시장이 안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과열되기 쉽다. 공급확대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투기가 유발되기 때문이다. 여러 증거를 제시할 필요도 없다. 올해 들어 문재인 정부가 대대적인 공급확대 정책을 발표했는데도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이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또 지금 공급확대 정책을 추진하면 4, 5년 후 실제 공급이 이루어질 무렵에 집값 폭락을 초래하는 시차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는 주택공급 확대는 지역균형 발전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민의힘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공급확대를 주장한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까지도 이에 동조한다는 사실이다. 정세균 전 대선 후보는 과세 강화와 규제는 부동산값을 상승시킬 뿐이라며 자신은 주택공급 '폭탄'을 퍼붓겠다고 약속했다. 박용진 후보는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해 서울 시내에 좋은 집을 우선 공급하는 동시에 김포공항 부지에 스마트시티를 구축해 주택 2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토지공개념을 약속한 이낙연 후보도 서울공항을 이전해 3만 호, 주변 지역 고도제한 완화로 4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재명 후보는 기본주택 100만 호 포함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임기 내에 25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공급확대 정책을 부동산 공약의 맨 앞에 배치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네 후보는 공급확대론에 인지 포획되었다고 판단한다.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만든 엉터리 주장이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의 지면에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내면화한 결과가 아닐까. 김두관 후보와 추미애 후보 두 사람은 공급확대론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들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의 주류가 아니다.
다음 대통령은 공급확대론의 주술에서 벗어나 확실한 투기 억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것은 투기 억제에 치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투기 억제 정책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김두관 후보가 지역균형 발전 정책을 급진적으로 추진해 주택 수요를 분산할 것을 주장한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할 탁월한 대안이다. 다음 대통령은 김 후보의 공약을 차기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로 삼아야 한다. 공급확대 정책을 펼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일단 투기적 가수요를 걷어내고 난 다음에 결정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