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 참석하며 통화하고 있다. 2021.7.1
연합뉴스
이때 국방부 차관이 비군사범죄 민간 이관에 우려를 표하면서 성범죄, 피해자가 사망한 범죄, 군인이 입대하기 전에 저지른 범죄만 민간으로 이관하자는 타협안을 제시한다. 전날 장관이 참모총장들과 논의한 결과다. 이후 한 시간 가량 이어진 회의에서 여러 의원들이 국방부가 갖고 온 타협안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고, 국방부는 이렇게까지 군사법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변변한 설명도 해내지 못했다.
차관은 비군사범죄를 민간으로 이관할 수 없는 이유로 군에서 다루는 사건에 음주운전이 많다는 주장을 펼쳤다. 영내에서도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비군사범죄 수사권이 민간으로 이관되면 음주운전 단속을 민간경찰이 영내에 들어와서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괴상한 주장이었다.
군사경찰을 아예 폐지하는 것도 아닌 마당에 음주 단속이야 군이 자체적으로 하면 될 일이다. 음주 단속 때문에 군이 자체적인 수사권을 유지해야 하다니 궤변에 가까운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군 스스로 독자적 사법체계를 유지할 까닭이 없음을 잘 보여준 셈이다.
그렇게 회의는 밤늦도록 이어졌고 9시 10분 잠시 정회된다. 그런데 1시간 반이 지난 10시 30분에 재개된 회의에서 의원들은 갑자기 국방부가 제시한 타협안으로 진행하기로 했다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회의를 마친다. 법안은 법사위를 넘어 본회의에 상정되었고, 정의당 강은미 의원의 반대 토론에도 불구하고 가결되었다. 국민의 80%가 군사법체계 개혁을 주문하고 있는 와중에, 국회는 국방부가 허락한 범위에서 개혁의 고삐를 놓아버렸다.
한심한 국회
국방부는 대단한 개혁이 된 것처럼 홍보하고 있으나, 개정 법률에는 독소조항은 물론 향후 예상되는 우려 지점도 많다. 대표적인 예로 성범죄와 사망사건의 경우에도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전보장, 군사기밀보호, 기타 이에 준하는 사정'이란 모호한 판단 기준을 근거로 군 수사기관, 군사법원으로 관할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장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군 안에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희망할 시 대법원에 장관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있으나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군인인 피해자가 장관의 결정에 정면으로 맞서 쟁송을 벌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예외 조항을 넣은 국방부의 속내는 국회 회의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차관은 8월 23일 회의에서 "사망사건이 1년에 한 100여 건 되는 데 대부분 자살이 많습니다"라며 "그래서 아주 단순한, 명백한 자살인 경우는 우리 군에서 할 수도 있고요. 국가안전보장 이런 경우에는 국방부 장관이 할 수 있다는 유보조항을 좀 달아서, 매우 명백한 자살이나 사고에 의한 사망사고, 교통사고나 이런 거에 의한 것은 군에서 수사를 하고(후략)"라 말했다.
국방부가 판단하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죽음은 국가안전보장을 명목으로 그냥 군에서 수사하겠다는 얘기다. '단순하고 명백한 자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지만, 수사도 해보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사망의 원인을 예단하여 수사 관할을 정한단 말인가. 이런 식이라면 장차 숱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수사를 민간에서 할 것인지 군에서 할 것인지 다투며 진을 빼는 모습을 목도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민간 경찰과 검찰이 얼마나 의욕적으로 군에서 넘어온 사건을 처리하게 될지도 미지수다. <2019 군사법원 연감>에 따르면 군검찰이 기소하여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2019년 기준 2839건이다. 개정 법률에 따라 민간으로 이관되는 사건이 전체 사건의 30%라 보면 850건 정도가 민간 경찰과 검찰로 넘어가게 된다. 애매한 숫자다. 이 정도 사건을 수사하자고 경찰이 국가수사본부 차원에서 조직을 신설하여 전담 수사를 진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지역 경찰들이 수사를 맡아 진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조직은 늘지 않고 부담만 느는 형국인 데다가 군의 특수성이 반영된 수사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에 따르면 민간 경찰과 검찰은 공소 제기 및 유지, 영장 신청 및 집행에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 수사 및 영장 집행, 지휘를 군사경찰과 군검찰에게 촉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조직과 인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상황에서 민간 수사기관에 부담만 준다면 결국 수사 주체만 민간으로 바뀌고, 실질적 수사는 촉탁을 받은 군사경찰과 군검찰이 그대로 진행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로아미타불인 것이다.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던 국방부로선 30%나 되는 사건을 민간으로 이관하는 것도 못마땅할 수 있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사·기소·재판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던 국방부의 극렬한 저항이 대부분 수용된 상황에서, 결과는 국방부의 판정승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한심한 국회다.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성폭력 사건과 사망 사건을 민간으로 이관시킨 것인데 장차 구타나 가혹행위로 물의를 빚는 사건이 생기면 그땐 폭행죄만 떼서 추가로 민간으로 이전할 생각인가. 국방부의 사생결단 속에 원칙 없는 이상한 개혁이 누더기 같은 군사법원법을 만들어냈다.
변화와 정의를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우리나라 그런 나라 아니라고 읊조리던 드라마 속 병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지난 8월 24일, 2014년 세상을 떠난 고 윤 일병의 어머니는 누더기가 된 군사법원법 개정 과정을 지켜보며 "또다시 2014년이 되풀이되는 것 같아 절망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먼 훗날 아들 옆에 설 때 좀 덜 부끄럽고 싶었다는 어머니의 절규 앞에 '그런 나라'는 언제쯤 찾아오는가. 국회가 후퇴한 만큼, 또 누군가의 삶이 벼랑 끝으로 뒷걸음질 치게 될까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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