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도 코로나도 생로병사가 있다

검토 완료

정진원(suriya)등록 2021.08.10 09:27
언제쯤부터인가 한참 나이를 먹고서야 인간관계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티비 막장드라마, 부부나 고부, 자녀 등과의 갈등을 다룬 인간관계 관련 프로그램은 늘 관계의 '노병사'의 괴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나를 비롯한 주위의 지인들도 한결같이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바로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 문제'인 것이다.
'사이'는 공간적 거리나 시간의 틈을 의미한다. '사이가 좋다'는 것은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둘 사이에 보기 좋을 만큼의 시공간적 거리를 두고 있다는 말과 통한다.
가령 거울을 코앞에 두고 나를 바라보거나 카메라 렌즈를 줌인시켜 상대를 그렇게 바라보라. 모두 괴물처럼 보일 것이다. 또 멀찍이 있어 망원경으로 바라보라. 제대로 상대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다. 모름지기 인간관계는 초점이 잘 맞는 멋진 사진을 찍을 때처럼 알맞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요즘같아서는 각도까지 맞춰야 맘에 드는 사진이 나온다.
사람의 관계도 그렇다.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고 좋은 사이를 유지할 때 비로소 인간관계의 '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행복한 순간을 주의하시라. 이제부터 '노병사'가 한 세트로 따라온다. 초점과 각도를 맞추려는 노력에 따라 싱싱하게 관계가 오래 유지되기도 하고 곧바로 상하거나 낡기 시작해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사이좋은 한 커플이 있다. 매력 넘치는 신부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이혼 경력이 있는 존경했던 신랑을 설득해 결혼하였다. 지금까지 수십년동안 잘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커플에게도 생로병사의 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십수년이 지난 어느 날 신부는 갑자기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가 된 것이다. 그녀가 남편따라 낯선 도시에 살게 되면서 다른 인간 관계가 협소해지며 시나브로 우울증과 몸에도 병이 생겼다. '내 인생이 뭐란 말인가' 회의가 몰려와 어스름 저녁나절 술 한잔 마시고 집근처 모르는 사람 산소에 가서 대성통곡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남편이 미안하다 읍소를 하고서야 동네 떠들썩한 해프닝이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는 지금도 잘 살고 있다. 늙고 병든 관계는 이렇게 가끔 다잡아야 상대가 아픈 줄을 안다.
사람의 신체뿐 아니라 사람의 감정도 노화가 오고 병이 든다는 단순한 진리. 그 이후 나도 어디 가서 대성통곡해야할 것 같은 순간들이 찾아왔다. 평생지기라 믿던 사람이 언제든지 적군으로 변하고 사랑하던 사람이 세월이 지나니 없느니만 못한 투명인간처럼 느껴질 때, 평생 노력했지만 번번이 탈락으로 인생이 불발탄만 같을 때 남의 산소에 가서 울고 싶어졌다.
결국 인간관계도 오래된 고무줄이 삭아 툭 끊어지듯 어느 날 자연사를 하는 날이 온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 분명한 인간관계를 인정하기 어렵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또 어디선가 새로운 관계가 생겨난다. 내가 심어놓고 지나쳤던 사소한 관계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예전 조용필의 노래가 약이 된다. '너를 용서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이라는 가사 말이다. 자연사한 관계는 잊어서 용서해 주어야 한다.
인간관계뿐이랴. 이 세상 모든 관계는 생로병사가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조용한 3차대전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그렇다. 이 실체없는 바이러스를 미워만 해서는 결국 내가 다친다. 이제 이 병이 가르쳐 준 것에 대해 철학할 시간이다. 사람을 2년동안 못 만나고 강의도 비대면 강의란 새로운 용어가 생겼다. 비행기 타고 가야했던 외국 학회도 안방에서 가능해졌다.
이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진심으로 사람이 보고 싶고 서로 건강을 기원하며 좋은 사이로 돌아가고 있다. 인간관계의 자정 기능이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한 코로나19도 생로병사 과정을 거쳐 곧 소멸해 가리니 우리는 꿋꿋이 살아남아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일이다.
 
 
덧붙이는 글 경상일보 경상시론에도 실린 글입니다.
첨부파일 20200626_180857.jpg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