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 윤심덕(1897~1926).
위키백과
단발령이 없었는데도 스스로 단발을 선택한 여성들은 여성해방이라는 목적의식을 갖고 그렇게 했지만, 단발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태도는 의외로 덤덤했다. 여성 단발이 세상을 망치고 있다는 식의 과도한 반발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2004년에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제6권 제2호에 수록된 전혜숙 동아대 교수와 임윤정 동아대 대학원생의 논문 '근대 여성사적 측면에서 본 단발의 사회적 변화'에서 그런 이들의 반응을 접할 수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20년대 언론 기사들에 등장하는 단발 반대론자들은 '머리카락을 자주 자르다 보면 소비가 늘게 된다', '단발 이후에 머리를 자주 감게 되면 시간적인 손해가 생긴다', '여성의 보배인 머리채를 자르는 것은 미(美)라고 할 수 없다',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위해 단발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해서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등등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들이 여성의 단발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까지 격렬하지 않았다. 단호하게 '안 된다'라고 하지 않고, '소비가 늘어난다'느니 '시간을 허비한다'느니 하는 구구한 논리들을 동원했다. 딱 부러지게 단발을 반대할 명분이 마땅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지지론자들은 평등이나 여성해방보다는 실용적 측면에서 응원을 보냈다. "그게 편하니까요"라는 안산 선수의 말처럼, 편리성을 높여준다는 이유로 단발을 지지했다.
당시의 미술평론가 안석주는 단발의 편리함을 지적한 뒤 "성큼 잘너 버리십시오"라고 권했고, 독립운동가 이상재는 "남자니 여자니 할 것 업시 머리를 깍는 것은 됴흔 일이오"라며 "위선(우선) 제 몸뎅이 하나만이라도 개죠(개조)를 해놓고" 보라고 권유했다.
또 <조선일보>에서는 건강 측면에서 단발을 추천하는 기사도 나왔다. "<조선일보> 신문에서는 '단발을 하면 긴 머리를 살리고 잇던 영양은 짤븐 머리에만 모히게 됨은 머리털을 위하야는 조흔 것입니다"라고 보도했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신여성들을 가장 많이 접하는 여성학교 교육자들 중에는 단발을 적극 지지하는 이도 있었고, 지지도 반대도 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 "여학교장들이 보는 단발에 관한 인식은 매우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단발을 개개인의 취미에 따라 하는 것이지 사회 전체가 따라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시각으로 나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논문은 말한다. '단발은 안 된다'며 적극 반대하는 여성학교 교육자들은 별로 없었던 셈이다.
여성학교의 남자 교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여성해방론 지지론자는 아니다. 이런 이들이 오히려 더 보수적일 수도 있다. 이런 교육자들도 대체로 편리성의 측면에서 여성 단발을 바라봤다. 적극적 지지자의 반대편에는 적극적 반대자가 아니라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입장'이 있었다. 신여성을 가장 많이 접하는 남성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단발이 주는 실용적 이익이 생각 외로 많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편리하니까
단발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극렬한 반대 논리가 나오지는 않았다는 점, 여성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장들이 적극 지지 혹은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은 여성 단발을 최초로 경험한 시대의 사람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시대 사람들은 전통적인 여성 헤어스타일과 새로운 여성 헤어스타일을 모두 다 경험했다. 그런 세대가 위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여성해방 여하를 떠나 새로운 스타일이 더 낫게 인식됐음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성 단발에 관한 논란은 1930년대로도 이어지지만, 단발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만한 설득력 있는 논리는 등장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100년 전의 논쟁은 단발 반대론자들의 패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1세기나 지난 오늘날에 와서 여성 단발에 관한 논란을 다시 일으키려 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는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 뒤 여성의 단발이 대세를 이루었으며, 단발을 하는 여성이나 지켜보는 사회가 이를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주의·주장을 떠난 단발의 편의성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