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얼간이(2011)

-우리의 교육은 어디에 서 있나?

검토 완료

김해규(kimsea6)등록 2021.07.28 15:35
                                            세 얼간이(2011)
                                    -우리의 교육은 어디에 서 있나?
 
고등학교 시절 '하버드대학교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드라마를 즐겨 봤다. 하버드대학교 법학대학원 이야기인데 '저렇게 공부하고도 살 수 있나'라고 생각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하트와 수잔이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킹스필드 교수가 더 기억에 남는다. 킹스필드는 법학대학원 학생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가 추구하는 교육철학, 교수방식에 대한 신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킹스필드의 교수법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다. '선생은 진리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산파와 같다'는 개념에서 비롯된 산파술은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식이기도 했다. 킹스필드 교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진다. 단답형이면 외워서 대답하면 그만이지만 꼬리를 무는 추가질문은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버텨내기 힘들다. 그래서 학생들은 잠시 쉴 틈도 없이 도서관에 앉아 법전을 파고 또 팠다. 하지만 창의적 질문에 대한 해답은 결코 법전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였고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 문제였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후자와 관련된 인물로 하트를 등장시킨다. 미국중서부지역 미네소타대학을 졸업한 하트는 금수저로 태어나 명문대 졸업장을 취득하고 기득권층을 꿈꾸는 여느 학생들과 결이 달랐다. 그에게는 뜨거운 가슴과 꿈이 있었고, 돈과 사회적 지위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려는 욕망이 꿈틀댔다. 하트도 하버드대학의 숨 막힐 것만 같은 분위기와 킹스필드교수가 두려웠지만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일반 학생들과 사뭇 달랐다. 하트의 장점은 촌놈들이 갖고 있는 인간적 모습과 여유였다. 스터디모임을 통해 적극적으로 한계를 극복했고 여자 친구도 만났다. 그리고 공부와 사랑 앞에서 여자 친구 수잔과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훌륭한 성적을 이끌어내는 묘기를 부렸다.
오랜만에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다. 2011년에 만들어진 인도영화이므로 벌써 10년 전의 작품이다. 세 얼간이도 '하버드대학교의 공부벌레들'과 배경이 비슷하다.
미국에 하버드대가 있고 한국에 서울대와 카이스트가 있다면 인도에는 ICE라는 대학교가 있다. 현존하는 '인도공과대학교'의 약자인데 천재들만 입학할 수 있다는 명문대이고, 입학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졸업은 장담할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학교다. 인도에서 ICE는 출세의 지름길이다. 프랑스에도 상위 0.1%만 입학한다는 '그랑제콜'이라는 대학이 있다. 대학 위의 대학으로 불러지는 최고의 엘리트교육기관이다. 이 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교수, 주요 관공서와 기업체의 간부가 되어 프랑스사회의 중추로 성장한다. ICE도 마찬가지다. 인도에서 ICE를 졸업한다는 것은 출세보장 증명서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입학하는 순간부터 목표가 분명하다. 서로를 신뢰하고 돕고 협력하며 함께 공부하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피눈물 나는 투쟁을 불사한다.
전통과 선망의 ICE대학교에서는 개인의 소질과 꿈은 불필요한 요소다. 창의성도 중요하지 않다. 본인의 재능과 꿈을 위해 학교와 학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출세가 보장되는 명문대이기 때문에 입학했다. 그러다보니 부모의 강요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교수가 가르치는 내용을 달달 외우고 시험을 잘 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수한 성적을 받은 사람을 칭찬하고 박수쳐주기보다는 헐뜯고 질시하기 바쁘다. 이러한 대학에 '란초'라는 엉뚱한 학생이 입학한다. 란초는 천재 중의 천재지만 여느 학생들과 입장이 달랐다. 평민이었던 그는 아둔한 귀족집안의 아들을 대신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ICE에 입학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이며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았다. 파르한은 전형적 파파보이다. ICE 입학은 모두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가문을 빛내고 싶어 했다. 파르한의 내면의 꿈은 사진작가였다. 전 세계를 누비며 자연과 생명을 촬영하여 내셔널 지오그라피 같은 잡지에 싣는 것이 진정한 꿈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 꿈을 이야기할 수 없었고, ICE에 입학하는 순간 앞으로 살아갈 길이 분명해졌다. 라주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다. 대가족인 그의 집안에서 라주는 미래의 꿈이다. 시골천재였던 라주의 ICE 생활은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았다. 금수저인데다 강남 대치동에서 단련된 '강남스타일'들과의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점할 수가 없었다. 성적은 바닥을 쳤고 낙제의 위기 앞에서 절망에 빠졌다.
한국사회의 자화상과 비슷했던 ICE대학을 세 얼간이가 뒤집어 놓았다. 가슴은 딱딱하게 굳었고 우월감과 출세를 위한 욕망만이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던 ICE에 똥침을 날리는 사건을 연달아 일으켰다. 친구를 경쟁자로만 인식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란초는 어려운 친구를 돕고 방황하는 친구들의 맨토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기말시험 앞에서 절망하는 친구를 위해 시험문제를 훔치다 들켜 대학총장 비루교수에게 쫓겨나는 절체절명의 위기도 겪는다. 자신을 위해 시험문제를 훔치려다 퇴학당한 친구들의 모습에 좌절한 라주는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두 다리가 부러지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세상만사 절망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절망의 이면에는 항상 희망의 뱃고동이 울리기 때문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저녁, 비루교수의 큰딸에게서 산통이 왔다. 도로는 물에 잠겼고 건물들도 물이 차올라 도저히 병원을 갈 수 없었다. 사랑하는 딸의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강철같았던 비루교수도 무너져 내렸다. 세계적 과학자임을 자처했지만 딸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 때 란초와 친구들이 나섰다. 란초는 산부인과 의사인 여자친구의 전화도움을 받아 진공청소기와 주변 기재들을 이용해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산모와 아이까지 살려냈다. 이 사건으로 란초와 친구들에게 내려진 퇴학조처는 취소되었고 란초는 수석졸업의 영광을 않았다. 상황에 밀려 자신들의 꿈과 존재가치를 잃었던 파르한은 비로소 아버지의 기대와 ICE대학 졸업장이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사진작가가 되었다. '두 다리가 부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두 발로 일어서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고백한 라주는 용기 있게 과거를 버리고 새 사람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영화는 변화된 삶으로 대기업의 임원과 내셔널지오그라피의 사진작가가 된 파르한과 라주가 졸업 후 소식이 끊긴 란초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감독은 현재와 과거 화면을 교차하면서 '인간은 무엇을 꿈꿔야 행복한가?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게 사는가?'를 질문한다. 파르한과 라주가 찾아낸 란초는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가 세운 과학 중심 대안학교는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활기가 넘쳤다. 란초는 학생들이 강요되지 않는 꿈을 갖도록 도왔고, 꿈을 이루는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두뇌로 수많은 발명특허를 받아 과학의 발전과 인간세계의 변화에도 기여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란초는 이렇게 말한다.
 
"사자를 훈련시켜도 의자에 앉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훈련이지 교육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교육이 한 번쯤 음미해 볼 말이다. (2021.07.09.)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