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선수가 페미라고 주장하는 인터넷 게시판 유저
신민주
안산 선수가 진짜 페미인지, 페미가 아닌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안산 선수가 밝혀야 할 필요도 없다. 그는 정말로 숏컷이 편해서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설령 그가 "페미"라 밝혀도 욕을 먹어서는 안 된다.
2015년, 인생 최초로 숏컷을 선택했을 때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들었다. 심지어 숏컷을 자르러 들어간 미용실에서도 "혹시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머리를 자르시나요?", "여자 분들은 머리가 너무 짧으면 별로인데 진짜 자를 건가요?"라는 질문을 들어야했다. 그 미용실은 원하는 길이로 머리를 잘라주지도 않았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남자들의 머리만큼 짧은 길이의 머리를 하고 싶었지만 미용실은 애매하게 긴 '여성용 숏컷'을 해주었다. 도대체 머리카락이 뭐길래.
'탈코르셋'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기에 머리를 자른 이유는 더웠기 때문이었다. 무더위가 계속되고,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는 묶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머리를 자르고 나니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가 생각보다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편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여자가 짧은 머리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머리를 하고 나니 여러 가지가 의심스러웠다. 내가 화장을 하는 것을 진짜 좋아하는지, 내가 브래지어를 하는 것을 진짜 좋아하는지, 내가 딱 붙는 옷을 입는 것을 진짜 좋아하는지. 그러다가 화장을 하는 것을 멈추었다. 브래지어도 하지 않았다. 더운 여름 딱 붙고 작은 옷들이 아니라 헐렁하고 시원한 소재의 옷들을 더 많이 입기 시작했다.
안산 선수가 사상 검증을 당하고 있을 때, 수많은 여성들이 SNS에 자신의 숏컷 사진을 올리며 여성_쇼트컷_캠페인에 동참했다. 그들은 아마 안산 선수가 당한 사상 검증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회에 통용되는 단 하나의 미의 기준을 거부한 수많은 여성들에게 늘 사상 검증은 뒤따라왔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과 함께 숏컷을 한 셀카 사진을 SNS에 남겼다.
안산 선수와 연대한 6000명이 넘는 '숏컷 여성'들이 있었기에 이 이야기의 결말은 스포츠라는 범주를 넘을 수 있었다. 사상 검증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모든 여성들의 얼굴과 신체가 평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얼평'보다는 '페미'라는 딱지가 나에게는 좀 더 영광스럽다. 페미든, 페미가 아니든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 미의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멋대로 사는 세상이 더 아름답기도 하다.
더운 여름날, 용기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시원하게 숏컷을 시도해볼 것을 권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머리카락은 곧 자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 번의 시도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열어줄 수도 있다. 꾸미든 꾸미지 않든, 스포츠에서도 사회에서도 여성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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