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상회 주인장 내외두 분은 47년 동안 구멍가게를 하며 서로를 의지했다.
민병래
오랜 얘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아주머니는 없는 반찬이지만 김치해서 저녁을 먹고가라며 붙잡는다. 처음 시집 왔을 때는 전라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몸이 홀쭉해졌는데 지금은 남도 김치 선수가 되셨다나.
아저씨가 특히 아주머니의 만두라면 입이 떡 벌어지는데 그 비결이 만두 속으로 갈아 넣은 이 김치에 있다고 자랑한다. 딸들은 호떡 장수할 때 익힌 반죽 솜씨로 빚어주는 도너츠, 서리태 갈아서 설탕 넣은 콩물 덕에 미인되었다고 따님들은 인정하지 않는 주장을 했다.
박서영 시인은 '업어준다는 것'이란 시에서 '업어주는'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아주머니와 구멍가게는 시인의 말대로 "등을 내어주고 업어주며 서로의 몸에 스며들어 숨결을 느끼고 심장의 고동을 들은" 오랜 친구였다.
2012년 새 집을 지을 무렵, 동네에는 이제 몇 가구 남지도 않고 노인들뿐이어서 매장(?)이 필요 없어졌다. 하지만 아저씨, 아주머니는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담배가게는 유지할 셈이다. 평생의 벗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들려줄 얘기가 많다는 두 분을 뒤로 하고 서울로 향하는데 허기질 때 먹으라며 아주머니는 찐 감자를 내어준다. 마당에서 꽃들과 수작하던 별빛이 자동차 시동소리에 놀라 외로이 매달린 담배표지판 주변을 감싼다. 마치 마지막으로 남은 달성상회의 상징을 지키는 수호천사라도 되는 듯.
<못다한 이야기>
- 이 글을 쓰는 데 박혜진 작가가 2012년에 두 차례에 걸쳐서 인터뷰한 녹취가 큰 도움이 되었다. A4 18매 분량의 글에는 아주머니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아울러 달성상회 주인장의 큰 따님은 여러 차례에 걸친 이메일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고 초안을 꼼꼼히 검토해줬다. 두 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 달성상회를 비롯, 전라남도 구멍가게 주인장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구멍가게 이야기>(책과 함께)에 풍성하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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