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마인드, 위로가 필요해

마스크 증훈군

검토 완료

정진원(suriya)등록 2021.07.07 17:03
'뷰티풀 마인드'라는 천재 수학자의 정신분열증을 인간적으로 다룬 영화가 있었다. 꽤 인상깊고 감동적이어서 가끔 다시 보곤 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영혼이 맑은 사람일수록 정신도 유리처럼 투명해 깨지기 쉽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일 뿐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19가 2년째 지속되자 여러 증후군들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내가 명명한' 마스크 증후군'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집에서 주로 생활해야 하는걸까 생각하다보면 문득 마음이 불안해지곤 한다. 상대의 마음도 예민하게 받아들여 서로 유리처럼 다루기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어느날 아침 산책을 하다 나도 모르게 무심코 욕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무관심하게 지나쳐 가고 있었다. 마침 내가 마스크를 끼고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다행이던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생각지 못한 마스크의 효능이라니... 공교롭게 주변사람들 몇몇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자기도 그런 적이 있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살다보니 쌓이는 욕구불만과 스트레쓰가 분노로 표출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는 증세. 마스크가 한 겹 내 속마음을 감싸준다는 생각에 그동안 속으로 했을 욕을 겉으로 표출하게 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속으로 곪기보다 겉으로 발산하게 하는 것이 욕의 효용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욕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그 많은 스트레쓰를 어떻게 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속시원히 욕이라도 해서 고달픈 인생사 견딜수 있도록 욕을 마련해둔 선조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사실 내가 혼잣말로 욕을 하고 자신에게 깜짝 놀란 것은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에 대한 배반감이 컸기 때문이다. '위로가 필요한 증후군'이다
누구도 생로병사의 과정을 피할 수 없기에 이즈음 부쩍 가족과 주위의 병고와 부고 소식을 맞닥뜨리게 된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했던가. 기다렸다는 듯이 예기치 못한 인생의 세 가지 괴로움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얼마전 식구가 갑자기 병이 났다. 처음엔 병은 소문내라는 속담이 있지 하고 몇몇에게 알렸다. 좋은 의사와 처방, 조언을 듣기 위함이었으나 곧 후회하였다. 소문은 일파만파 퍼지고 그야말로 '환자보호자 지옥'이 시작되었다. '미리 검사를 하고 살았어야지, 감놔라 배놔라형, 이럴수록 환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공자왈 맹자왈형, 신사임당 가라사대형'까지 '뷰티풀 마인드' 영화 한편을 찍는 기분이었다. 오래 사랑해온 사람을 잃고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며 내가 듣고 얻고 싶었던 위로와 조언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채 인간관계 대폭 바겐세일을 하였다.
마치 영화에 주인공을 위하는 척 정신을 망가뜨리는 유령들이 내 곁에 포진하고 서서 나를 향해 집중 포화를 퍼붓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진심을 다한 위로나 칭찬하는 말을 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진심어린 표현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도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어려운 일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쩔쩔매며 어줍잖은 위로가 상처가 되고 마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이다.
 
그때 '어떡하지', '그렇구나'라는 말에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이 말의 힘은 무엇일까. 상대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고 같이 걱정하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공감과 위로가 되는 말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뷰티풀 마인드'의 유리같은 마음씨의 주인공들이여, 부디 이 위태로운 시간에 서로를 위로하시기를. 아프면 아프구나 따라하며 상대의 마음이 되어 어떡하면 좋을까 복창하시기를. 백짓장 한장에서 신기하게 힘이 나고 좋은 방도가 생길 터이니.
 
 
덧붙이는 글 경상일보 경상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