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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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근 현상으로 보이지만 왜곡된 정보라는 의미에서 '가짜뉴스'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전쟁에서 잘못된 정보를 흘려 상대를 교란시키거나, 틀린 정보를 흘려 경제적 이득을 취하거나, 근거 없는 낭설을 퍼뜨려 누군가를 곤혹스럽게 하는 건 흔한 이야기다. 자연 재해나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었을 경우 가짜뉴스는 더더욱 기승한다. 잘 알려진 예가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벌어진 대규모 조선인 학살로, 조선인들이 방화나 테러를 꾀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비극의 배경이었다.
항상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전 세계가 '가짜뉴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인터넷 시대의 정보 확산 속도와 전 지구적 범위일 것이다. 속도와 범위가 결합했을 때, 정보 생산자는 권위를 갖게 되고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한 의사 교환 및 조직적 활동이 가능해진다. 이는 순기능을 할 수도 있지만, 가짜뉴스에 기반을 두었을 경우 인간의 가치 판단 능력을 흐리게 하고 왜곡된 사회적 영향력을 형성, 비생산적인 갈등과 사회적 불신을 증폭시킨다.
21세기 가짜뉴스에 상응하는 20세기 형태로는 프로파간다가 있다. 21세기 가짜뉴스 확산에 인터넷이 있다면, 20세기 프로파간다에는 19세기 말 20세기 전반기에 진행된 전신 전보, 라디오 등 통신 기술의 발달에 따른 정보 혁명이 있었다. 21세기가 디지털 기술에 환호했듯이, 당시 세계도 새로운 기술이 가지고 올 해방적 측면에 열광했다. 기대에 맞게 신문과 라디오는 소수 엘리트층의 정보 독점을 상당 부분 깼고 어느 때보다 대중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통신 발달이 초래할 정치사회적 효과와 사용 방법상의 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전쟁 승리라는 지상 최고의 목표 하에 각 국가는 정보전 혹은 심리전의 이름으로 정보를 과장 및 왜곡하는 프로파간다를 경쟁적으로 추진했다. 저널리즘 윤리를 고민할 기회가 없던 언론사도 프로파간다 기획에 적극 참가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언론의 급속한 성장
19세기 전반기가 철도의 시대였다면, 19세기 후반기와 20세기 초는 전신 전보의 시대였다. 1856년 대서양 전신회사(Atlantic Telegraph Company)를 설립한 미국인 사이러스 필드(Cyrus Field), 영국의 존 브렛(John Brett)과 찰스 브라이트(Charles Bright)가 최초로 대서양 밑으로 케이블을 깔아 유럽과 북미를 연결시킨 후, 통신에서의 공간적 제약은 상당히 극복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통신 산업의 주도권을 가지고 자국에 호의적인 뉴스를 아시아, 아프리카 및 남미에 송신, 국제 무역 및 여론을 주도했다. 전신 전보가 갖는 정치 경제 군사적 유용성에 뒤늦게 눈을 뜬 독일은 19세기 말 등장한 무선 전신(Wireless telegraph)과 라디오 산업에 신경을 바짝 세웠다. 철도, 신문, 유선 전보 등 통신 교통 모든 면에서 앞선 영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수단으로 무선 통신에 주목, 국가 주도의 통신 산업 육성 계획을 세웠다. 이어 1913년 트랜스오션(Transocean) 회사를 세워 독일 정부 입장을 반영한 뉴스를 해외로 송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