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미국에서 있었던 미개한 미디어 행태를 2021년 한국이 반복할 수는 없다

[김언경의 미디어 안경] 넷플릭스 <미디어재판>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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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경(true4731)등록 2021.06.01 09:29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6부작 <미디어 재판(Trial by Media)>을 봤다. 2020년 5월에 공개된 이 다큐는 한편 한편이 모두 미디어의 흑역사를 적나하게 보여준다. 그중 5편 <환호하는 구경꾼들>(아래 다큐)은 성폭력 사건을 사회와 법정과 미디어가 얼마나 '미개하게' 풀어나갔는지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 다큐를 보며 나는 한마디로 온몸에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 1983년 미국에서 있었던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감정이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벌어진 행태를 보며 계속 우리나라의 비슷한 행태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런 발언은 우리나라의 이 사건에서 똑같이 나왔다. 이런 보도 행태는 우리나라의 이 사건과 거의 똑같다. 이런 식의 기시감이 반복되면서 나의 부끄러움도 더욱 커졌다. 우리는 왜 이런 사건을 충분히 인지하고, 반면교사 삼아 예방하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늦었지만, 영화 속 사건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유사한 행태들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어떤 사건이었나
 
1983년 미국 메사추세츠의 작은 마을 선술집에서 4명의 남성이 한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 술집에는 피해자 이외에 20여 명의 남성이 있었는데 4명은 직접 성폭력에 가담했고, 술집에 있던 남성들은 환호했을 뿐, 아무도 말리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두 딸을 키우는 21세의 평범한 엄마였던 피해 여성은 '딸들은 더 좋은 세상에 살게 해주고 싶다'며 재판을 결심했다.
 
그러나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에서부터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드러났다. 1983년이 중세 시대가 아님에도 강간은 섹스의 일종이며,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이후 나중에 앙심을 품고 고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황당한 소리를 지껄였다. 여성단체들은 피해 여성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행진 시위를 기획했는데, 예상외로 많은 시민이 모여들었다. 강간범과 구경꾼들이 기소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촛불시위 여론에 힘입어서 강간 용의자 4인과 방관자 2명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범죄의 생중계, 필요한가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자 방송사는 이 사건을 생중계하자는 발상을 내놨다. 이전까지는 강간 사건 재판이 전국에 방송된 적이 없었다. 담당 판사는 이 발상에 "매료됐다"고 표현했다. 그는 "현재 미국의 직접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결정적인 상징"이라고 판단했고,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법정에 카메라가 들어오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었기에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너무 많은 문제를 낳았다. 성폭력 과정 자체를 하나하나 다시 짚어가는 과정 자체도 그랬지만, 피해자 증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피해자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주려는 용의자 측 변호인의 거칠고 비도덕적인 질문은 피해자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끔찍한 '2차 가해'가 연출되었고, 이 모습은 전국에 중계되었다. 이런 방송을 본 시민들은 다시 방송에 출연해서 이 사건을 두고 강간인지 아닌지 논쟁을 벌였다.
 
특히 피해자가 증언자로 나왔을 때, 법정은 증언자의 실명, 그가 출신학교 전체를 발언하게 했는데 이 내용은 그대로 방송을 탔다. 다큐에서 판사는 이름이 공개됐다는 사실에 대해서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모든 미디어 종사자들이 피해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막연하게 재판 중계에서도 그러리가 생각했다는 것이다. 판사는 자신의 실수이고 깊게 후회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경우, 안희정 성폭력 사건은 거의 생중계만 안 됐을 뿐이지 거의 모든 공판을 생중계 수준으로 전달해줬다. 공판 다음날 새벽이면 이미 어제의 공판에서 오간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보도들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보도는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의 주장을 'VS' 구도로 나열되었고, 안희정 씨 측의 일방적 주장인 '학벌' '고학력자' '장애인' '애정관계' 등을 제목에 부각한 보도도 많았다. 남편을 옹호하기 위한 배우자의 증언도 지나치게 집중 부각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2차 가해성 보도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다수 시민은 '국민 배심원 놀이'에 빠져들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발언을 그대로 전해 주는 '몰상식한 보도 행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2016년 한 섬마을의 교사가 지역 주민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때, 채널A, MBM 등은 피해자인 선생님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지역 주민의 다양한 발언들을 그대로 전했다. 예컨대 "다 착실한 사람들이잖아요. 기사 난 건 60~70% 과장해서 나오고 있어요. 이상한 쪽으로 나가고" "바래다주면서 선생님 잘 잠그고 주무시라고 그랬는데도. 그냥 열어주니까, 순간적으로 같이 술 먹다 우발적으로" 등이었다. TV조선은 70~80대 남성 7명이 같은 마을에 사는 지적장애 여성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던 사건을 전하면서 "노인들 속은 것 같아. 걔는 임신이 안 되는 애다. 그랬는데 그거 임신이 덜컥 돼 버렸네"라는 어이없는 주민의 발언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범죄 용의자의 사회적 소수자성 부각

다큐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장면은 또 하나 있다. 언론은 4명의 성폭력용의자가 "포르투칼 국적의 남성"임을 강조했다. 영화에서는 이런 언론의 잘못된 보도 행태로 인구 절반인 해당 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포르투갈 이민자에 대한 엄청난 편견이 일파만파 커졌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포르투갈 계 이민자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 사람들은 이 나라에 한 치도 도움이 안돼요.", "이 나라는 포르투갈처럼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아요." 등의 노골적이며 부적절한 차별 발언이 라디오 생중계로 시민에게 전달되었다. 지역신문 독자투고에서는 '포르투갈 이민자를 배에 태워 이 나라에서 추방하라'는 글까지 등장했다.
 
이 사건은 미디어가 범죄를 보도하면서 용의자의 민족, 인종 등 사회적 소수자성과 엮어서 부각할 때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언론이 부당하게 공격 좌표를 '포르투갈'로 찍어주고, 공론장에 이런 부당한 목소리를 담아주면서 포르투갈계 미국인의 인권은 심각하게 침해된 것이다. 이로 인해 포르투갈계 시민들은 판결 결과에도 불복하고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을 비난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이런 갈등은 키운 언론의 책임은 막중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미국에서만 있었을까. 우리 언론이 범죄와 관련한 보도를 하면서 무분별하게 용의자의 사회적 소수자와 연관된 키워드를 노출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가장 기억에 나는 것은 '고양 저유소 풍등 사건'이 있다. 당시 언론은 외국인 노동자를 피의자로 지목했고. 경찰은 그를 긴급 체포했다. 그러자 연합뉴스는 제목에서 그의 국적 정보를 넣어 속보를 냈고, 대부분의 언론은 별 다른 고민없이 보도 제목에 국적 정보를 담았다.

2019년 5월 인천과 서울 문래동 등에 붉은 수돗물이 발생했을 때, 시사뉴스는 >문래동도 붉은 수돗물..."일부 이슬람 난민 수행일 수도">라는 황당한 보도를 내놨다. 이 보도 어디에도 이슬람 난민의 소행일 개연성이 없음에도 기사는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이 내용을 제목으로까지 뽑은 것이다.

2019년에는 한 방송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경찰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석방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언론은 이 방송인이 성소수자라고 보도했다. 2020년 코로나19 상황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이태원 클럽에 대해서 '게이클럽'이라며 지목한 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확산되기도 했다.
 
이처럼 범죄, 약물 및 마약, 성매매 등의 부정적 사안을 보도하면서 그의 소수자성을 부각하는 것은 해당 소수자 전체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이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그들의 인권침해를 넘어서서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민주주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임을 언론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기술이 있더라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고 실천해야
 
다큐의 마지막은 성폭력 사건 보도의 부작용에 대해서 다룬다. 재판 결과는 성폭행범 4명에게 유죄가 선고되었지만, 피해 여성이 이 재판에 대한 미디어 중계와 보도로 인해 입은 피해는 너무나 컸다. 그녀는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가해자와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서 독한 말로 무장한 변호인들의 날선 공격을 감당해야 했고, 그 모습은 전국에 중계되었다. 피해자의 영혼과 정신은 그야말로 막대한 상처를 입었다. 오죽하면 당시 언론은 "피해자가 재판을 받는 듯이 보입니다"라고 평했다.
 
모든 신상이 공개된 그녀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큐는 "피해자는 여기서 자랐고 친구들도 여기 있었어요. 그의 터전이었죠. 그가 아는 세상은 여기가 전부였어요. 하지만 자신과 두 딸에게 위험하다는 두려움을 얻었죠. 떠나야만 했어요. 그 남자들은 몇 년짜리 형을 받았지만 세릴은 평생을 떠돌아야 하는 형벌을 받았어요"라고 정리했다. 그녀는 2년 후 술을 마신 채 차를 몰아 전신주를 들이받아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이 다큐의 인트로에 나오는 질문을 던져본다. 다큐에서 누군가가 "무슨 뉴스 철학을 바탕으로 그런 재판을 그렇게 장시간 동안 방송할까요?"라고 묻자 방송사 측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기술이 있습니다. 하지 않을 이유가 뭡니까?"
 
이 다큐를 보면서 떠오르는 또 다른 사건은 한강에서 사망한 조정민 씨와 관련된 각종 추측성 보도 및 가짜뉴스들이다. 지금 우리에겐 돈이 된다면, 클릭수가 보장된다면, 대중이 관심을 가진다면 무엇이든 기사와 영상으로 만들어 내려는 존재가 많다. 기성 언론뿐 아니라 유튜버, 블로거, 그리고 댓글을 달도 SNS로 공유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있어도 이제 '하지 않을 이유'를 깊게 생각해야 한다. 다큐 속 한 뉴스 편집자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공부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했어요. 우리가 만든 일이죠"라고 후회했다. 이 편집자의 발언을 반면교사 삼아 이제는 부주의하게, 악의적으로 내놓는 보도와 그 보도를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행태가 멈추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홈페이지에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유튜브 <노으른자>에서도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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